200년 된 英 보수당이 모델
유연한 대응이 장수의 비결
시대에 맞는 변화 주도하길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30% 벽에 막혔다. 그나마 높게 나오는 리얼미터 조사를 기준으로 했을 때다. 한국갤럽 조사는 20%대 초반 박스권에 갇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리얼미터·갤럽 모두 40%를 오르내린다. 문재인정부는 경제에서 죽을 쑨다. 성장률, 고용, 수출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지만 지지율은 한국당을 압도한다. 조사가 잘못된 걸까. 천만에.
한국당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한국당이 잘못해서다. 민주당이 싫어도 한국당으론 안 간다. 이런 사람들을 부동층이라고 부른다. 갤럽 조사를 보면 부동층은 25% 안팎이다. 어떡하면 한국당이 이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서울대 박지향 교수(서양사학과)는 '정당의 생명력'이란 책에서 영국 보수당을 파헤쳤다. 보수당은 무려 200년을 이어온 정당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보수당은 "20세기의 100년간 독자적으로든 또는 연립정부로든 68년 동안 집권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멍청한 당'이라고 조롱한 보수당이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한국당은 대선배 격인 영국 보수당으로부터 뭘 배울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당은 능수능란한 카멜레온이 돼야 한다.
영국 보수당은 말만 보수당이지 사실은 개혁당이다. 19세기 선거법 개정을 주도했다. 그 바람에 도시 유권자가 시골 유권자보다 많아졌다. 1867년 선거법을 개정한 뒤 치른 선거에서 보수당은 보기 좋게 졌다. 하지만 그 덕에 보수당은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시대정신을 수용한다는 이미지를 심었다.
보수당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1945년 총선에서 완패했다.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복지국가의 이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토대가 놓였다. 놀라지 마시라, 보수당은 여기에 동조했다. 박 교수는 1947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산업헌장'을 주목한다. 헌장은 "노조가 산업에서 담당하는 '위대하고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고 '높고 안정된 고용률과 혼합경제'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두고 윈스턴 처칠은 "이제 우리 당에도 사회주의자가 있구나"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처칠도 재집권한 뒤 노동당 정책을 몽땅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보수당 이데올로기는 벤자민 디즈레일리 총리(재임 1874~1880년)가 틀을 잡았다. 디즈레일리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보수당은 특정 계급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당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박 교수는 보수당이 성공한 요인 중 하나로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꼽는다. 시대정신을 담은 맞춤형 정책을 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빌린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카멜레온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주 '2020 경제대전환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건강한 시장경제 회복이 목표다. 훌륭하다. 다만 한 가지, 양극화를 풀 현실적인 대안 제시를 기대한다. 양극화 해소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시대적 과제다. 이를 놔두고 오로지 시장경제만 내세우면 실망이다.
영국 보수당은 특정계급이 아니라 국민의 당을 표방했다. 국민에게 이롭다면 반대당 정책을 훔쳐 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당이 원조 카멜레온 보수당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길 바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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