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스피커 2-3(끝)] 준형이 아빠 장훈·건우 아빠 김광배 아버지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사무처장
자식 잃은 부모는 온몸이 망가지는데.. 4월16일이면 책임자들에게 '괴롭다'는 전화가
"미래 세대에게도 세월호 알리겠다.. 우리 아이들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진도 여객선 침몰 당시의 사고 현장 사진. 뉴스1 제공
인터뷰가 진행되며 아버지들도, 그리고 기자들도 긴장이 풀려갔다. 무거운 주제로 만났지만 담배를 피며,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소도 주고받았다.
준형이 아빠 장훈씨는 기자에게 "사람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더라. '민주투사다, 강성이다'라고 말하더라"면서 "그러나 우리도 말수도 적고 수줍음도 많은 보통의 엄마, 아빠들"이라고 털어놨다.
장훈씨는 5년 전까지 다양한 사업을 했다. 야채 도매업을 하다가 자녀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안정적인 직장을 알아봤고 이직을 하려던 찰나였다. 건우 아빠 김광배씨는 전기 공사 업체에서 일을 했다. 맞벌이를 하던 김씨의 아내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 줘"라는 말부터 하던 아이들에게 서운하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2014년 4월부터 지금까지 두 아버지는 생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김씨는 "50대 중반인데, 내 아들 건우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남은 생애를 보내려고 한다"며 "이 일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고 당시 단원고 1학년으로 다니던 김씨의 둘째 아들은 군에 입대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김씨는,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자식 잃은 부모는 온몸이 망가져
참사 이후 많은 가족들은 생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아버지는 "참사 이전과 같은 집은 한 곳도 없다"고 말한다. 장훈씨는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표현을 쓰지만,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아이가 없는데, 그 빈 자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나. 모두가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며 "어디서는 보상금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아이들이 없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는 '치명적인 사건을 겪고 그것을 회상하면서 지속적으로 불안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흔히 '트라우마 증세'라고도 부른다. 가족들이 겪은 트라우마 증세는 육체적 후유증으로도 발현되고 있었다.
"유가족 대부분이 이가 없다. 잇몸부터 무너지더라. 고지혈증은 기본이고,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 증세도 온다. 감정기복도 심해지고 불면증과 수면 장애가 크게 온다. 나는 40대인데 퇴행성 관절은 벌써 왔다. 몸이 감당이 안 된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폭음을 하다 보니 간경화도 오더라." 장씨가 전한 가족들의 증세는, 말 그대로 '참척(慘慽)'의 고통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제공
■"4월16일이면 책임자에게 '괴롭다'며 전화가"
세월호 당시 책임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기 특조위 때 진상규명분과장이었던 장씨는 "본인들은 나름 괴롭다고 하는데, 자기 일하고 승진도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한 책임자는 3주기 때부터 4월16일이 되면 장씨에게 전화를 한다. '이날만 되면 괴롭다'고. 5주기 때 장씨는 차마 그 전화도 받지 못했다.
아버지들이 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진실'과 '책임'이다.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책임자들을 찾아가 만나지만, 그 당시 상황에 대해 물으면 여전히 입을 다물어 버린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진실이지만, 그마저도 요원하다. 장씨는 "진솔한 사과는 다른 게 아니라, 진실"이라며 "진실을 말하지 않고 사과하는 건 진실한 사과가 아니다"라고 호소한다.
장씨는 "그들도 참사에 자유롭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책임지고 나서 자유로운 것과 책임지지 않고 자유롭지 않은 것은 다르다. 그런데도 아직 한 명도 자기고백이나 내부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고백도 39년 만에 나왔다. 세월호 참사 조사가 아무리 빨라도 (내부고발이) 쉽게 나오진 않겠구나 싶다"라고 덧붙였다.
5년이 지났음에도 내부고발이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들은 '조직논리'라고 답했다. 장씨는 "해경과 해군, 국정원 등 조직논리가 강한 집단이라 퇴직을 하고도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고름을 아무리 놔둬도 살이 안 되고 썩은 살을 아무리 감춘다고 새 살이 돋지 않는다"며 "썩은 살을 도려내듯이, 책임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그 조직이 건강해진다"고 강조한다.
■"미래 세대에게도 세월호 알릴 것"
세월호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이들이 하고 있는 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이다.
장씨는 "사회가 빠르게 변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사회는 천천히 변한다. 10년에서 30년 동안,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완전히 변할 수 있다"며 "그걸 이루기 위해 우리 가족협의회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사업은 '교육'이다. 교육자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세월호가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래야만 미래의 아이들이 커서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생, 유치원생들에게 5년 전의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그동안 몰라서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그때 세월호 가족들은 말해준다. "우리한테 미안할 게 아니야. 너희들이 컸을 때, 이런 일을 너희도 당하면 안 되니깐,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깐 너희도 커서 이런 일을 하렴."
그때마다 아버지들은 뿌듯함을 느낀다. 장씨는 "아이들의 감정선이 파도를 치는데, 결국 감성이 풍부해진다.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게 느껴진다"며 "그럴 때 마다 뿌듯해진다. '우리 아들 위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하게 만들었구나, 미래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장훈씨의 남은 삶의 목표는 하나. 세월이 흘러, 아들 준형이를 만났을 때 한 마디를 듣는 것이다.
"내가 착한 일 많이 하면, 하늘나라 가서 우리 아들 옆으로 갈 거예요. 그때 우리 아들 손 한 번 잡아주면서 묻고 싶어요. '준형아, 아빠 잘했어?' '응. 잘 했어!'라는 준형이의 한 마디를 듣고 싶어요. 이승에선 못하겠죠. 죽어서, 저승에 가서, 딱 한 마디 듣고 싶어서, 뒤돌아보지 않고 5년 넘게 하고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김광배씨의 아들 건우군(왼쪽)과 장훈씨의 아들 준형군.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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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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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매직스피커>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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