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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ESS 화재 원인 발표, 전화위복 계기삼길

"제조결함·관리부실 겹쳐"
재생에너지 속도 늦추길

정부가 11일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에 대한 민관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ESS는 생산된 전기나 심야 여유전기를 배터리처럼 저장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민관조사위는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용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 통합관리체계 부족 등을 화재요인으로 꼽았다. 5개월여 조사치고는 어정쩡한 결과였다. 다만 "배터리 제조 결함과 관리부실이 결친 복합인재"로 결론이 난 만큼 정부도, 업계도 양적 성장에만 치우쳤던 ESS산업 생태계를 되돌아 볼 때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ESS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꼽았다. 그러나 2017년 8월 이후 전국에서 23건의 ESS 화재가 생기면서 이 구상에 제동이 걸렸다. 두루뭉술한 화재원인 조사 결과가 그래서 문제다. 물론 세계적으로 우리가 선도하는 분야라 ESS에 대한 기술적 통계가 축적되지 않은 고충은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배터리 결함 논란과 관련,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얼버무린 건 무책임해 보인다. 정밀 안전대책과 ESS산업 진흥 모두 정확한 사고원인 진단이 선행돼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관조사위가 발표한 사고 원인 및 대책이 지나치게 모호해 기업 입장에서는 ESS 투자의 불확실성이 되레 커졌다고 볼 소지도 있다. 더욱이 설치기준 등 기술표준이 강화되면 업계 차원에서 수익성 저하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각종 옥내 안전장치를 강화하든, 옥외 전용건물에 설치하든 결국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게 뻔해서다. 앞으로 ESS업체들이 안전기술 강화에 투자를 늘리도록 견인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도 세액공제나 특례요금제 등 실효성 있는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SS 화재의 원인을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진흥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문재인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이미 제시했다. 하지만 태양광·풍력 등 이를 구체화하려는 프로젝트는 전국 곳곳에서 벽에 부딪혔다.
작년 말 완공할 예정이었던 서울대공원 주차장 태양광발전소는 첫삽도 뜨지 못한 형편이라는 게 상징적 사례다. "태양광이 외려 환경을 파괴하고 ESS 화재 등 안전에 대한 우려만 키운다"는 게 각지 반대 주민들의 공통된 목소리라서다. 정부는 당분간 ESS산업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 주력하면서 비현실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에너지 전환계획을 재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