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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폭탄' 줄지만 허점 그대로… 한전은 2900억 떠안을판 [전기료 여름 한시 인하]

전기 적게 쓰는 1400만가구..누진제 폐지땐 혜택 사라져 부담
체계 유지한 채 임시처방 계속

'요금 폭탄' 줄지만 허점 그대로… 한전은 2900억 떠안을판 [전기료 여름 한시 인하]

논란이 되고 있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지속된다. 18일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는 누진제 틀을 유지한 채 7, 8월에 한해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방안(1안)을 정부에 최종 권고했다. 누진제 개편이라고 했으나, 여름 폭염 전기요금 할인대책인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 누진제를 폐지하면 1400만가구의 전기요금이 인상돼 현실적으로 무리수가 컸다.

정부는 탈원전·신재생 확대의 에너지 전환에 따른 합리적인 전기요금 구조개편은 중장기과제로 또다시 덮어뒀다. 소비자들의 여름철 요금폭탄 공포는 덜 수 있겠으나 누진제 폐지라는 정책폭탄은 또다시 다음 정부로 넘긴 셈이다. 전기독점판매사업자인 공기업 한국전력은 수천억원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한전의 비용부담이 누적돼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정책비용 부담이 상시화되는 셈이다. 비용 부담 주체도 논란이다. 정부는 공기업 한전이 부담할 것을, 한전은 정부 재정 투입을 요구하고 있다.

■7, 8월 한달 350kwh 쓰면 1만원 덜 내

1안인 누진구간 확대안을 적용하면 전국 모든 가구들은 최대 25.5%, 최소 11.8%의 요금이 할인된다.

에어컨 등 냉방장치를 사용해 450kwh를 넘지 않게 쓴다면 전기요금은 2만2510원, 25.5% 정도 할인된다. 300kwh를 쓰는 가구는 26% 할인을 받는다. 이번 누진구간 확대의 최대 할인 수혜 구간이다. 도시 거주 4인 가구의 월평균 전력소비량인 350kwh 수준이다. 이보다 많은 350kwh를 쓰면 할인액은 1만760원, 19.5% 할인된다. 500kwh 이상 전력 다소비가구도 월평균 1만6000원 정도 요금이 내려간다. 기존대로라면 누진제 3구간(401kwh)에 들어가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해야 했다. 200kwh 이하를 사용하는 저소비가구(1구간)는 이번 개편으로 달라지는 게 없다.

■전기요금 허점은 그대로

정부는 이번에 누진제 완전 폐지를 3안으로 제안했으나, 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애초에 낮았다. 여름 직전인 이달에 누진제 개편을 매듭짓겠다는 것은 이미 여름철 요금할인(누진구간 확대) 쪽에 무게를 두고 검토했다고 봐야 한다. 실제 누진제가 폐지되면 약 1400만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르게 된다. 이들은 300kwh 이하를 쓰는 가구들이다.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가 누진제를 통해 원가 이하의 요금(1kwh 93.3원)으로 쓰는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혜택이 집중되는 가구는 한달 평균 400kwh 이상 쓰는 다소비가구들이다.

자신이 쓴 만큼 전기를 사용한다는 취지에 맞게 누진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고소득 1~2인가구 증가, 비합리적 필수사용 공제, 탈원전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정책비용 증가 등 누진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지적 때문이다. 이수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누진제를 폐지하면 1, 2구간 사용자(70% 정도)가 손해를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제도를 유지하는게 맞느냐. 사용한 만큼 전기요금을 부담한다는 원칙이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누진제를 존속하면서 전기요금 구조의 허점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소득과 무관하게 1구간 사용자들에게 지원하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2500~4000원)'는 이번 논의에서 제외했다. 2인 이하 가구는 전체의 55.3%(2017년 인구총조사)에 달하고, 이들이 고소득층 1인 가구일지라도 전기를 적게 쓴다는 이유로 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개편에서 전기 사용자에 대한 기초자료도 빈약했다.


한전도 진퇴양난이다.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 수는 없고, 그렇다면 2900억원 규모의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판이다. 이미 한전은 1·4분기 6299억원 적자가 쌓였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