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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시리즈]휠체어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배움터 일궈 희망을 심다

두천 두드림 장애인학교 정진호 교장
다섯살때 생긴 척추장애 굴복하지 않고 직업훈련소에서 도장 파는 기술 연마
인쇄소 차린 후 배움의 아쉬움 느껴..40대에 대학 마친 후 야학 세워
9년만에 평생교육시설로 성장..학생 52명, 4개 학급에 취미반도 생겨
교장·교감 뺀 다른 선생님은 재능기부..배움의 기쁨 느끼는 학생들 볼 때 뿌듯

[감동시리즈]휠체어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배움터 일궈 희망을 심다
경기도 동두천시 동두천로에 자라집은 두드림 장애인 학교.
[감동시리즈]휠체어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배움터 일궈 희망을 심다
두드림 장애인 학교에서 자원봉사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 정규수업은 평일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되며 동아리 활동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한다.
경기도 동두천시 남쪽 상가골목,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상가 3층에 자리잡은 두드림 장애인학교에서 울려퍼지는 선율이다. 지난 2010년 성인 장애인들을 위한 야학으로 인쇄소 2층에서 시작된 학교는 이제 330㎡(100평) 규모의 평생교육시설로 자라났다. 5명이던 학생은 52명으로 늘었고, 기초교육과정을 가르치는 4개 학급과 기타와 미술 등 다양한 취미동아리도 생겼다. 그리고 이 모든 결실에는 학생들의 열정과 선생님들의 헌신, 그리고 정진호 교장(56)이 있었다. 정 교장은 학교를 찾아간 날에도 학생들과 함께였다. 인쇄소 일을 마치자마자 학교로 내달은 그는 다음달 공연을 앞둔 발달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기타를 연주했다. 그는 "이 빠진 동그라미. 우리 동아리 명칭이 이 빠진 동그라미다. 가수 송골매의 노래 중에 '이 빠진 동그라미'라는 곡을 보면 이가 하나 빠져서 장애를 가져서 장애라는 이유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많다. 노래에도 그런 표현이 있듯이 결국 모든 걸 다 찾았지만, 그래도 장애를 가졌어도 지금 이대로가 나에게는 행복하다는 의미다." 정 교장은 동아리를 소개한 뒤 자신의 휠체어 바퀴를 짚었던 손을 기타로 옮겼다.

■장애를 넘어선 만능 철인

사실 그의 인생은 노래 가사보다 험난했다. 5세가 되던 해 세발자전거를 타다 굴러 등을 다친 그는 척추신경이 망가져 영원히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몸이 됐다. 정 교장은 암울한 현실에 절망했지만 굴복하지 않았고 재활원에 들어가 다시 인생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마친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훈련소에 입학해 학창시절부터 관심 있던 도장 파는 기술을 연마했다. 훈련소를 마친 뒤에는 시장통을 돌며 무작정 도장을 팔아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인쇄소도 세웠다. 비슷한 장애인들을 고용하며 사업을 꾸려가던 그는 여전히 차가운 사회의 시선과 배움에 대한 아쉬움에 낙담했고 결국 더 배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정 교장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42세에 삼육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만학도의 길을 걸었다. 정 교장은 늦깎이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장애인들이 짊어진 이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기서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전철을 타고 회기까지 가는 데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러면서 왔다갔다 하면서 했는데 그것도 버거운데, 이동차량이라든가 전철 같은 것도 없고… 만약에 이동수단이 없었다면 배움의 길로 들어설 수가 없었을 거다."

그는 배움의 문턱과 함께 육체의 문턱까지 넘은 철인이다. 재활원 시절부터 휠체어 마라톤을 시작한 정 교장은 1979년 제1회 전국 장애인체전 휠체어 마라톤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다음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늘 '내가 내 나이에 만약에 인생의 마라톤을 한다면 지금 몇 등으로 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했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버릇이 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춘다. 참 잘생겼다. 항상 웃는다. 그러다가 보니까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는 "긍정의 힘"이 자신을 이끈 동력이라고 말했다.

■꿈을 심는 학교

정 교장은 학교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장애인들에게 "뭔가를 자꾸 심어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인쇄소에서 장애인 직원을 쓰며 각종 장애인협회 회장을 맡아온 그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에 고민했다.

정 교장은 "장애인이 일하는 모든 사업분야들이 단순작업들밖에 이뤄지는 게 없고 그러다 보니까 고부가를 낼 수도 없다. 부업에 불과한 정도의 직업군밖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장애인 여러분들은 배우는 게 우선이겠다고 해서 회사에 2층에 조그마한 공간을,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실이었는데 직원을 아래로 다 내리고 학교로 꾸몄다"고 회상했다. 그는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설립을 위해 길거리로 나가 시위를 하고 끊임없이 발로 뛰어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아냈고 더 큰 장소로 학교를 옮겼다.

그러나 지원금은 학교 임대료를 내기에도 빠듯한 실정으로 지금도 나머지 운영비는 후원금과 정 교장의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정 교장은 "돈은 없고 겨울이 됐는데도 난방도 안 되고 정말 답답했다. 연탄도 공수해서 연탄난로를 피웠는데 또 자금도 안 되고… 그렇게 해가지고 파지와 공병을 주워 팔아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때 정 교장과 함께 파지를 주웠던 동료가 두드림 학교의 전청희 교감이었다. 정 교장은 "교감선생님은 사회복지사 공부하시면서 실습 나왔다가 발목 잡혔다. 인쇄소 거기 그 2층에서 공부방 시작할 때부터 계셨으니까" 하며 웃었다. 그는 "교감선생님은 전자회사 이런데 파지를 모으러 갔다. 정리해주는 조건으로 대신 박스를 가져가라는데, 스티로폼을 다 묶어줘야 되고 다 정리해주고 이러더라. 교감선생님도 고생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현재 두드림학교에서 항상 일하는 선생님은 교장과 교감선생님 2명뿐이다. 나머지 선생님들은 모두 스스로 재능을 나누기 위해 학교를 찾은 봉사자들이다. 전 교감은 함께 교실들을 둘러보며, 카투사 출신으로 7년째 학교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 교장은 동두천에서 재능을 나누고픈 분이 계시다면 우선 학교로 연락을 달라며 시간표와 분야에 맞게 선생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감동시리즈]휠체어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배움터 일궈 희망을 심다
두드림 장애인 학교 교무실에서 정진호 교장(앞줄 오른쪽)과 전청희 교감(뒷줄 왼쪽 첫번째), 자원봉사 선생님과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감동시리즈]휠체어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배움터 일궈 희망을 심다
두드림 장애인 학교의 기타 동아리 '이빠진 동그라미' 학생들이 오는 7월 12일 열리는 제1회 오티즘 엑스포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고 있다.
■학생들 열정에서 보람 찾아

지난 10년 가까이 학교를 운영해온 정 교장은 학생들에게서 보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가 없더라도 바뀌는 게 눈에 보인다. 왜냐면 표정이 바뀐다. 다 웃지 않나? 처음에는 안 그랬다. 웃을 거리가 없는데"라며 두드림학교가 장애인들을 위한 재정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만났던 만학도를 기억하며 열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60대 지체장애인이셨는데 바둑 아마추어 7단인가 그랬다. 당연히 고등학교 정도는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조용히 내게 오셔서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을 살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고 회상했다. 정 교장은 "당시 그분에게 '일단 공부를 하자. 살짝 하는 척만 하면 내가 다 이야기를 해서 사주겠다'라고 하고 집중적으로 그분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학생은 정 교장을 믿고 공부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그분이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에 '진짜로 합격 이거 하는 거 돈 주고 하는거냐? 아닌 것 같다' 이러시기에 나는 대통령도 그런 건 못한다. 본인 실력으로 지금 한 거다"라고 말해줬다. 그분은 결국 1년6개월 만에 초중고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대학 사회복지과 졸업까지 하셨다"며 뿌듯해했다. 정 교장은 "사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또 학교에 와서 보면 많은 학생들이 저렇게 정말 웃어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목표에 대해 좀 더 넓은 동두천 보산역사의 빈 공간으로 학교를 옮겨 장애인들이 만든 공예작품을 전시하고 공연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자연스럽게 그게 사회적 기업, 말로만 하는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진짜로 이 친구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가면서 뭔가 형성해 나가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게 이제 마지막 꿈이다"라며 웃었다.
정 교장은 "지체장애인들은 장애라기보다도 몸이 그냥 불편한 정도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런 분들에게는 기초생활수급 뭐 이런 게 아니라 그 직업군 관련해서 사회는 몸이 불편한 이분들을 향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자꾸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적인 장애인 정책에서 "장애가 없는 분들이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장애인들 당사자들의 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된다"며 "정책을 다 만든 다음에 뭐가 잘못됐네 하는 것보다 같이 책임의식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