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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누진제 완화' 반기.. "3000억 달하는 비용 못떠안아"

이사회, 전기요금 할인결정 보류.. 경영진 배임 우려도 반대 이유
정부 '냉방비 대책' 발등의 불

공기업 한국전력공사의 이사회가 최대주주인 정부(KDB산업은행 등 51.1%)에 반기를 들었다. 21일 한전 이사회는 '매년 여름(7, 8월) 상시적인 전기요금 할인'에 대한 약관 개정 안건을 전격 보류했다. 요금 할인에 따른 3000억원의 비용을 한전이 전적으로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사회가 의결을 보류함으로써 정부에 강하게 항의표시를 한 것이다. 정부 정책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침을 더 명확히 해달라는 한전의 요구를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이번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 의결에 따른 '배임' 가능성에 한전 경영진이 상당히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두달간 '전기요금 할인'에 들어가려는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전기요금 여름철 상시할인'은 법적으로 전기판매사업자인 한전이 전기요금 약관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전기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당초 계획대로 7월부터 시행할 수 있다. 한전 이사회 의결이 더 늦어지면 7월 할인을 소급적용하는 방안은 있다.

이날 한전은 김종갑 사장,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등 이사진 15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를 열어 4시간여 격론을 벌였다. 그러나 7, 8월 1600만가구의 전기요금을 월평균 1만원가량 할인하는 내용의 '누진구간 확대개편'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고 조만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한전 측은 "추가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의결을 보류하고 조만간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한전의 반기'는 예고된 일이다. 쟁점은 최대 3000억원의 비용이다. 이를 전액 부담하지 못하겠다는 게 한전의 입장이다. 한전은 지난해 여름 한시 인하 때도 3587억원의 손실을 떠안았고 올해도 2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사정이 이러니, 한전 경영진은 소액주주들로부터 경영부실 책임을 물어 배임 및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고발을 당할 지경에 처했다. 한전의 이익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올 줄 알고도 '누진제 개편'의 약관 개정을 의결한 이사진이 대상이다. 이날 이사회에서도 배임 여부가 상당부분 쟁점이었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전 고위관계자는 "이사회에서 로펌에 확인한 경영진 배임 가능성에 대한 법률 검토 결과를 공유했다. 배임 여부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적자 보전방안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산업부는 할인액 일부를 정부 재정(에너지특별회계 등)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액은 총 할인 추정액의 10~20% 정도로 예상되며, 이것 또한 국민 세금을 쓰는 일이어서 국회 승인이 있어야 한다.
결국엔 국민들이 덜 내는 전기요금을 국민들의 다른 주머니에서 내는 것과 같은 꼴이다. 한전이 부담한다 해도 공기업의 적자는 다음 세대가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선심성 요금할인'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결국 공기업 한전 부실과 정책 불신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