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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까지 공개하고 고유정 인권 걱정 왜?…"제도적 모순"

얼굴까지 공개하고 고유정 인권 걱정 왜?…"제도적 모순"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장이 6월11일 제주시 동부경찰서 4층 강당에서 열린 ‘전 남편 살해 사건’ 수사 결과 최종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2019.6.11 /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경찰서장 "현장검증 조리돌림"에 흉악범 인권 재조명
대중 반응 싸늘…경찰 내부에서는 응원 목소리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고유정(36) 전 남편 살인사건의 파장이 피의자 인권문제로 번졌다.

고유정 사건은 범행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신상공개 제도 등 사회적으로 여러 다양한 논란거리를 던졌다. 이번에는 흉악범의 인권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유정 사건을 맡은 제주동부경찰서 박기남 서장이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이 될 수 있다"며 현장검증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신상정보 공개 제주 첫 사례이자 고유정 사건만큼이나 국민의 지탄을 받은 2016년 성당 살인사건 범인 중국인 첸궈레이(50)는 현장검증을 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제주서부경찰서 서장이 공교롭게도 박기남 현 동부서장이다.

누리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제주동부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한마디' 게시판에는 박 서장과 제주경찰을 질타하는 글들로 도배되고 있다. 평소 2~3건이 고작인 게시판에는 지난 26일부터 경찰 비난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27일 하루에만 70건의 글이 달렸다.

A씨는 이날 해당 게시판에 "고유정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길래 지키려 했나"며 "비참하게 죽은분과 유족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고유정만 염두에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B씨도 "60평생 살다 살다 이런 일도 다 보게 된다"며 "제주동부 경찰님들 국민이 보고있다.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반면 경찰 내부에서는 박 서장의 결정을 '결단'으로 표현하며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다.

제주경찰은 "피의자가 범행동기를 허위진술로 일관하고 있고 굳이 현장검증 하지 않더라도 범죄 입증에 필요한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에서 현장검증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며 현장검증을 하지않은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는 했다.

제주동부경찰서가 지난 20일 경찰 내부망에 올린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수사 관련 입장문'은 이날 현재 조회수가 1만건 이상이고 수백개에 댓글이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 상당수는 사건을 수사한 경찰을 응원하고 언론이 지나치게 과도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합법적이고 객관적인 수사절차인 현장검증에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간 것"이라며 "이런 논리라면 피의자에게는 수사 자체가 가혹하니 수사를 하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신상정보 공개때도 비슷한 논란

고유정 즉 피의자 인권과 관련한 논란은 이번 사건 신상공개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신상정보 공개 제도는 2010년 도입 당시부터 인권 침해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반발이 있었다.

흉악범의 신상정보를 공개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목적이지만 불명확한 대상자 선정기준과 운영 방식, 2차 피해 등으로 논란에 휩싸여왔다.

도입 9년째인 올해 고유정 사건으로 신상정보 공개 제도는 다시 도마에 올랐다.

고유정처럼 긴 머리를 풀고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면 강제로 공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보니 "신상공개도 남녀 차별하냐"는 논쟁까지 벌어졌다.

최근에는 고유정을 넘겨받아 수사 중인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를 이유로 수사 상황을 일체 함구하고 있다. 앞서 경찰 역시 검찰 송치 이전까지 같은 이유로 고유정 수사 상황에 입을 닫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 얼굴 등 신상까지 공개된 피의자의 피의사실 공표를 우려하는 것은 제도적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기소 이전에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는 신상정보 공개와 기소 전 피의자 정보는 물론 피의사실까지 알리면 안 되는 피의사실 공표는 서로 충돌한다. 신상정보 공개 시기를 기소 이후 또는 법원 판결 이후로 미루지 않는 한 이같은 충돌은 불가피하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형법 제126조에 실린 법 조항으로 검찰이나 경찰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처벌받도록 한 엄연한 범죄다. 다만 실제로는 공익과 국민 알권리를 우선해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피의사실 공표가 화두로 떠오른 건 올해 울산지검이 약사 면허증 위조 사건 자료를 배포한 울산경찰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소환하면서부터다.


가뜩이나 수사권 조정으로 불편한 관계인 검경 갈등이 더 확산된 시기가 고유정 사건과 맞물렸다. 검경 갈등이 고유정 사건에 불똥튄게 아니냐는 추측이 그래서 나온다.

오윤성 교수는 "신상공개 문제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다면 형평성 시비가 생겨 대중들에게 '왜 저 피의자에게만 특혜를 주나? 유착관계가 있나?'라는 오해를 심어 주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