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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전기료 누진제 완화 의결에 정부 '재정지원' 명문화?

한전 전기료 누진제 완화 의결에 정부 '재정지원' 명문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전력 임시이사회에서 의장인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논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9.6.2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한전 전기료 누진제 완화 의결에 정부 '재정지원' 명문화?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배임 논란 딛고 7~8월 전기료 할인 한전이사회 통과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 등 손실보전 협의 관측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한국전력 이사회가 지난 28일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안을 가결한 배경에는 정부의 재정지원 약속과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여론 부담 등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이사회 비상임이사를 중심으로 정부의 구두상 재정 지원 약속만으로는 배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로 가결에 회의적인 기류가 형성됐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지원 '명문화'가 가결로 이끌었다는 얘기다.

30일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와 한전 이사회는 이틀 전 임시이사회 소집을 앞두고 누진제 개편안 시행에 따른 한전 손실분을 보전한다는 내용의 전기요금 체제개편안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 내용이 담겼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전 이사회가 요구하는 '손실 보전' 부분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한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틀 전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한 임시이사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전반적 전기요금 체제 개편안도 함께 가결됐다"며 "자세한 내용은 월요일(7월1일) 한국거래소 공시를 통해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산업부 고위 당국자는 "전반적 전기요금 체제 개편안이 재정 지원 부분과 연관됐고 이에 대해 한전 측과 이미 협의를 마쳤다는 것까지만 알려드릴 수 있다"며 손실 보전에 대한 추가 협의가 진행됐음을 인정했다.

이전까지 산업부는 누진제 개편안 시행에 따른 한전의 손실분을 관계부처와 국회 협의 등을 거쳐 마련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나 명문화한 합의는 없었다.

이로 인해 한전 이사회는 정부의 손실 보전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며 지난 21일 열린 이사회 때 누진제 개편안 의결을 한 차례 보류했다.

한전이 지난 1분기 600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1~2조원이 넘는 손실 전망이 나온 상황에서 누진제 개편에 따른 여름철 요금 할인에 3000억여원의 추가 적자가 불가피하다.

이에 한전 소액주주들은 이사회가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할 경우 이사들을 배임죄로 고발하겠다고 압박했고 이사회는 배임 여부에 대해 로펌에 법률해석을 문의하는 등 부담스러운 모습을 노출했다.

특히 로펌에서 누진제 개편안 의결에 따른 이사회 배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을 내놨다고 알려지면서 지난 21일 열린 이사회 당시 비상임이사들을 중심으로 격론이 오갔고 결국 의결 보류로 끝났던 것이다.

일주일 만에 다시 열린 이사회가 여론 악화 부담 등을 이기지 못하고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했지만 만약 산업부에서 공개한 재정지원 방안에서 발전된 내용이 없다면 한전 이사회가 이를 의결했겠느냐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28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추가로 의결된 '전반적 전기요금체제 개편안' 합의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상되는 이 합의에는 우선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완화 또는 폐지를 검토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현행 누진제 1단계 구간의 소비자(월 200kWh 이하 사용)에게 월 4000원 한도로 요금을 할인해주는 것으로, 이를 폐지할 경우 한전은 약 4000억원의 손실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할인 수준을 절반인 2000원으로 완화하더라도 상당한 손실 만회가 된다.

관측되는 또 다른 합의로 정부가 내년 내놓을 전기요금체제 개편 로드맵에 경부하요금, 즉 기업에 주는 심야 초저가 할인요금을 조정하는 등 산업용·일반용 전기요금 체제를 손질해 누진제 개편에 따른 손실을 메꾼다는 계획이 담겼을 것이란 분석이다.

누진제 개편안 하나만 놓고 봤을 땐 한전 이사회 배임이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전기요금체제 개편 로드맵 중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면 배임 논란을 피할 수 있고, 정부가 이를 명문화했다면 이사회로선 부담을 줄이게 된다.

에너지학계 한 인사는 "한전 이사회가 정부의 전기료 할인 정책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부담감도 컸겠지만 지금 당장 정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배임 논란에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을 던져준 것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전 측이 합의한 전반적 전기요금체제 개편안은 예고대로 다음달 1일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논의해 온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8일 현행 누진 요금체계를 유지하되 7~8월 두 달만 누진 구간을 확대 적용하는 권고안을 제시한 바 있다.

㎾h당 93.3원이 부과되는 1구간을 0∼200㎾h에서 0∼300㎾h로, 187.9원이 부과되는 2구간을 200∼400㎾h에서 300∼450㎾h로 각각 확대하고 요금이 280.6원인 3구간은 450㎾h 이상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7~8월 시행됐던 한시적 누진제 완화가 매년 여름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 1629만가구가 월평균 1만142원의 할인 혜택을 받는 대신 한전은 매년 2847억원을 추가로 짊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다소비 전력 구조를 바꾸는 에너지전환 정책 기조와 상반된 행보라는 지적과 함께 한전 안팎에서는 요금 할인만큼의 손실이 불가피해 이사회의 배임 가능성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