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 부동산 거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04년부터 진행한 NBC 방송의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서 탄생한 유행어다. 이 프로그램은 트럼프의 회사를 연봉 25만달러로 1년 운영하는 계약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포맷으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면접'으로 불렸다.
이를 통해 트럼프는 대중적 인물이 됐다. 탁월한 흥행 감각이야말로 워싱턴 정가의 아웃사이더인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밑천이었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쇼맨십을 다시 보여줬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53분 번개회담'을 성사시키면서다. 그의 '깜짝 월경'과 김 위원장에게 한 '즉석 백악관 초대'의 효과가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4분간 남·북·미 정상의 만남도 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트럼프가 연출한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처럼 비칠 정도였다.
어찌 보면 그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이 타결되지 못한 데 관심을 기울이던 미국 언론들의 의표를 찌른 형국이다. 뉴욕타임스 등은 뒤늦게 트럼프의 차기 대선 기획용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민주당 후보들의 TV토론회 열기는 눈에 띄게 시들해졌다고 전하면서다.
이번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체면이 손상된 김 위원장에게 핵협상 재개의 명분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실질적인 북한의 비핵화로 이어진다면 우리에겐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일과성 평화 이벤트에 그친다면 한반도 구성원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결과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가 그런 맥락에서 정곡을 찔렀다. 그는 트윗을 통해 이번 판문점 회담을 "리얼리티 TV쇼"라고 규정하면서 "이 '가짜 외교'로 미국과 남북한이 사소한 영광(kudos)을 누리는 동안 인권침해와 핵정권은 정당화된다"고 꼬집었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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