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너무나도 먼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
취재진, 휠체어 타고 지하철 승차 시도해 봤지만…
[편집자 주] '인(忍)'이라는 한자에는 '참다' 이외에도 '잔인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장애, 忍'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의 잔인함을 어떻게 견디고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어 주의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이 역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음으로 발 빠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에서 무심코 흘려버리는 이 안내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긴장의 끈을 조여 맨다.
비장애인이 '한 걸음'으로 외면하는 15㎝ 남짓의 간격은 장애인에게 10층 높이의 절벽 끝처럼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지난 4월 신촌 한 병원을 향하던 지체장애인 장향숙(60·여)씨는 열차와 지하철 승강장 사이에 앞바퀴가 끼는 사고를 겪었다.
앞바퀴는 빠지고 뒷바퀴가 들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장씨는 겁에 질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칫하면 승강장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다행히 주변 승객들의 도움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었지만 장씨에게 이날의 트라우마는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보니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어마어마하게 넓었다"며 "내리지 않으려다 병원에 가야 해서 용기를 냈는데 바퀴가 빠져버렸다"고 전했다.
이어 "장애인은 집 밖을 나선 순간부터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며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죽음을 체험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현행 도시철도규칙과 도시철도 정거장 설계지침에 따르면 승강장 연단의 간격은 10㎝, 높이 차는 1.5㎝를 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2017년 기준 서울지하철 1~9호선 역사 중 간격이 10㎝를 초과한 역사는 111개로, 전체 역사 중 1/3을 넘는다.
실제로 2호선 신촌·홍대, 3호선 경복궁·충무로·동대입구 등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은 역으로 장애인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하다.
취재진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3호선 경복궁, 충무로 역 등에서 지하철 승차를 시도해봤지만, 앞바퀴가 끼어서 오를 수 없었다.
취재진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경복궁, 충무로 등 역에서 승차 시도를 해본 결과 앞바퀴가 승강장 사이에 끼어 열차에 오를 수 없었다.
앞바퀴가 낀 휠체어는 사용자 힘으로 빠지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대다수의 장애인은 승강장 내 마련된 교통약자 지정석에서 열차에 오른다. 문제는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더라도 승차하는 역에선 간격이 좁지만 하차하는 역의 간격은 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3호선 독립문 역 4-4 플랫폼은 고무발판이 설치돼 안전하게 승차할 수 있다. 하지만 경복궁 역 4-4 플랫폼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어 휠체어를 이용해서 하차하기 어렵다.
휠체어 이용자 A씨는 "목적지가 처음 가보는 역일 경우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지 않을까 출발할 때부터 불안감에 휩싸인다"며 "간격이 넓으면 위험을 감수하고 하차를 시도하거나, 아예 하차를 포기하고 역을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승·하차 시 역무원에게 전화해 안전발판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지만, 하차 시간을 맞춰 계산하긴 쉽지 않다"며 "장애인은 여전히 울며 겨자먹기로 모험하듯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중교통'이지만 대중이란 말에 장애인은 빠져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측은 문제점을 개선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12일 입장을 밝혔다.
공사 측 관계자는 "고무발판을 설치해 승강장 사이 간격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며 "2호선 신도림역과 3호선 경찰병원 역 등에는 승강장 안전문과 연계돼서 작동하는 '자동안전발판'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안전성이 증명되면 다른 역에도 적용해 사고를 방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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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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