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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짧게 보나 길게 보나 대일 경협은 필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일 통상갈등 탓에 올해 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3일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서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 내놓은 경제전망에 일본 수출규제의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상황이 더 악화하면 경제에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낮췄다. 2.2%엔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추경 통과는 불투명하다. 이 마당에 일본 변수까지 겹쳤다. 자칫 성장률이 2%를 밑돌 수도 있다.

당장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곳은 산업계다. 7월 1~20일 중 반도체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 넘게 줄었다. 가격 하락이 주원인이지만 곧 일본 변수까지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는 23일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일본 경제산업성에 제출했다. 하지만 일본이 의견서에 귀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아베 총리는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라"며 연일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금까지 많은 산업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왔다"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힘들어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당장이 급하다. 부품·소재 기술력은 일류 선진국의 조건이다. 이는 무수한 실패와 축적의 시간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이 바로 이런 능력을 갖춘 나라들이다. 우리가 지금 개발에 착수해도 언제 국산 대체재가 나올지 불투명하다. 설사 우리가 일본에 어깨를 견줄 만한 부품·소재 강국이 된다 해도 한·일 경협은 필수다. 한국 혼자 모든 부품·소재를 자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경제를 가장 냉정한 시각으로 본다.
이주열 총재와 같은 이가 큰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재계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더 당당하게 해야 한다. 행여 청와대와 정치권이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