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각역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숙하는 권모씨(67)가 횡단보도 앞에 앉아있다./사진=강현수 인턴기자
"저기 들어가느니 차라리 밖에서 덥고 말지"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 중인 서모씨(65)는 노숙인의 자활과 자립을 돕는 서울시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서씨는 "안에 술 취한 사람들끼리 싸우고 멀쩡한 사람을 발로 찬다"며 "악취도 심하다 보니 밖에 앉아 있는 게 마음 편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노숙인 동선 및 실태 고려 안해"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다시서기 희망센터는 한파와 폭염 등으로 고통받는 노숙인들의 긴급구호와 자활을 위해 설립됐다. 대한성공회는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서울역과 숙대입구역 총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서울시에서 이곳에 예산 27여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 거리의 노숙인들은 더위에 지쳐가지만 일부는 센터를 외면하고 있었다. 노숙인들의 동선이나 실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의 의견을 청취해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5일 서울역 인근에서 만난 남모씨(62)는 소매로 연신 땀방울을 닦아냈다. 남씨는 그러나 노숙인 시설에 들어가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남씨는 "들어가면 미어터져서 죽겠는데 가끔 술 취한 놈이 와서 행패 부리고 똥오줌을 싼다"며 "그냥 밖에 있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이날 다시서기 희망센터는 에어컨과 공조기가 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TV 옆에는 노숙인들의 여행용 가방과 이불 등이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노숙인을 위해 마련된 탑골공원 이동 목욕 차량/사진=강현수 인턴기자
■"의견 받아 최대한 신경 쓰겠다"
서울시는 기존에 운영하는 다시서기 희망센터 이외에도 별도의 폭염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무더위쉼터 확대 운영, 건강 취약자 별도지정·특별관리, 이동 목욕 지원확대 등이 주요 골자다.
이마저도 노숙인들의 동선에 맞지 않아 외면받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8시께 노숙인 위해 탑골공원에 마련된 이동식 목욕 차량 샤워실 바닥에는 물 한 방울 없었다. 차량 앞에는 노숙인을 위해 준비해둔 새 옷과 양말, 속옷, 수건, 칫솔, 치약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원센터 측은 최근 이곳에서 목욕한 노숙인은 두 명뿐이었다고 전했다. 노숙인이 밀집한 탑골공원 북문과 동떨어진 곳이 주차구역으로 선정된 탓에 이용률이 낮은 것이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노숙인들이 많은 탑골공원 북쪽에 차량을 설치하면 시야를 가린다는 민원을 받는다"며 "목욕 차량이 눈에 띄다 보니 노숙인들이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한다는 의견도 있어 최대한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 강현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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