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으로 일제의 법정에 선 이는 안중근 외에도 3명이 더 있다. 안중근과 단지동맹을 맺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토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중국 하얼빈으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처단 계획을 세운다. 우덕순 등 세 사람은 하얼빈역 바로 전에 있는 채가구(蔡家溝)역에서, 안중근은 최종 목적지인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치르기로 한다. 만약 이토가 탄 기차가 채가구역에 멈췄다면 누구의 총알이 그의 가슴에 박혔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했던 이들은 모두 후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대접을 받았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지난 1962년에, 유동하는 1988년에 각각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또 광복 후 귀국해 대한국민당 최고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안중근 추모사업을 펼치기도 했던 우덕순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돼 있다. 안 의사의 거사를 다룬 뮤지컬 '영웅' 같은 작품에서도 이들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지로 나온다.
한데 이들 중 우덕순이 일제에 정보를 제공한 밀정(密偵)이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13일 KBS 탐사보도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덕순은 출옥 후 조선인민회장 등을 맡으면서 정반대의 길을 간다. KBS가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등에서 찾아낸 자료에는 그가 일제에 첩보활동비를 청구한 문서와 다달이 받은 월급명세, 독립운동가들의 동태를 파악한 정보보고서 등이 포함됐다.
3년 전 '밀정'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항일과 친일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사건'(1923년)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이는 조선인 일본 고등경찰이었던 황옥이 의열단 단원과 함께 중국에서 국내로 폭탄을 반입했다가 발각된 사건으로, 황옥이 일제의 밀정이었는지, 의열단을 도운 항일투사였는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에이지 오브 섀도(The Age of Shadows)'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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