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연세대 젠더관련 수업에 '누가 듣는지 구경 가보자' 등 악성 댓글 줄잇고 수강신청 방해
일방적 혐오 아닌 소통 필요
폐강 위기에 놓인 <페미니즘 철학의 이해> 수업 관련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댓글 어플 캡쳐
#. 최근 충북대에서는 다음학기 교양수업으로 개설되는 <페미니즘 철학의 이해>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강의 개설을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에 '이 강의를 수강하면 취직에 불리할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해당 게시글에는 "덩치는 산만한 분들이 혼자 2인분을 못하냐" "페미는 신고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뇌가 있는거냐"라는 등의 모욕적인 댓글이 달렸다. 충북대에서 처음 개설되는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그거 나 들어봤는데 별로던데"라는 댓글이 달리며 학생들의 수강신청을 방해하기도 했다.
■"페미니즘 낙인찍히면 소외될까"
20일 해당 강의를 개설한 한상원 철학과 교수에 따르면 '페미니즘 철학의 이해' 수업은 지난학기에도 개설됐으나 인원수 미달로 폐강됐다. 한 교수는 파이낸셜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두 학기 연속으로 폐강 위기에 놓여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에타에 그런 게시글이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른바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나 행동)' 현상이 충북대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본인의 페이스북 등 학생들이 볼 수 있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공간에 호소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한 교수는 "해당 강의를 수강하면 취직이 불리할거라는 게시물은 루머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대학이라는 공론장을 통해 철학적으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배우고 논의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후 강의 개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나서 지인들에게 수강신청을 독려하는 등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해당 강의는 수강인원 최소인원 30명을 넘겨 개설됐다. 한 교수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 대해 '누가 듣는지 구경가자'는 댓글 등이 달린 이후 공포감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며 "페미니즘에 관심있다는 것을 커밍아웃하게 되면 딱지가 붙고 소외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취업난과 양극화문제 등을 올바르게 해결해주지 못하다 보니 청년세대 젠더갈등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했다.
■"페미니즘은 혐오 아닌 소통 방법"
젠더 관련 과목에 대한 반발 현상은 충북대 뿐만이 아니다. 연세대도 최근 강의 '연세정신과 인권'과 관련해 집단적인 항의를 받았다. 해당 과목은 인권·사회정의·젠더·난민 등을 주제로 구성됐으며 2020년 학부 신입생부터 필수과목이다.
해당 강의를 두고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모임'이란 단체는 지난 13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연세대 건학이념을 무시하는 젠더 인권교육 필수화 웬말이냐"며 강의개설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무분별한 인권교육이 바른 성문화를 무너뜨리고 동성애 옹호를 조장한다"며 "(난민 등) 특정 소수의 인권만 무한적으로 보장되고 일반 국민이 역차별을 당하는 왜곡된 인권 의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본 강좌는 특정 집단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입장과 함께 일정을 고수했다.
젠더과목에 대한 반발 현상과 관련해 전문가는 페미니즘 의미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학은 따로 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한 영역"이라며 "처음 도입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수업을 들여다보면 서로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학문임을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왜곡되고 과장된 젠더갈등 양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런 강의는 매우 필요하다"며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은 혐오나 과도한 공격이 아닌 약자의 경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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