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호 안양시장(오른쪽) 8월 독립지사 김국주옹 방문. 사진제공=안양시
[안양=파이낸셜뉴스 강근주 기자] 이재천 독립지사는 1935년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0월 백범 김구 선생의 밀명으로 인천항에 입항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의 동생 이재현 지사는 중국 상해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1940년 일본군 36사단을 상대로 한 태행산 유격전에 참전했으며, 제7대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을 지냈다. 백범 선생은 이재현 지사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해 결혼 축사도 직접 써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재천·이재현 선생은 안양 출신 형제 항일애국지사다. 정부는 이재천 지사에게 대통령 표창(1963)과 건국훈장애국장(1991)을 수여했고, 동생 이재현 지사는 독립장(1963)에 추서됐다.
안양시는 이재천-이재현-원태우-한항길-이영래-하영홍-김국주 등 안양 출신 또는 연고를 둔 항일애국지사 7인의 독립운동을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동영상에는 애국지사 7인 실물과 당시 활동모습을 담은 사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행적과 삽화 및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해 8분 분량으로 만들어졌다.
항일애국지사 동영상은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과 기념음악회에서 선보였으며, 지금은 안양시 홈페이지와 공식 SNS,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안양시 관내 초·중·고교는 이를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1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되는 해인데, 일본 경제보복까지 겹쳐 항일애국지사 독립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생각된다”며 “항일애국지사 동영상이 나라사랑 정신과 안양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고취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천-이재현 형제 독립지사 동상. 사진제공=안양시
원태우 독립의사 의거 표지석. 사진제공=안양시
한항길 독립지사 흉상. 사진제공=안양시
원태우 지사는 1905년 11월22일 을사늑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로 안양에서 서울로 이동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서리재 고개(현재 관악역 인근)에서 열차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당시 24세 청년이 벌인 이 거사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1909년보다 4년 앞서 진행된 암살계획이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에게 건국훈장애족장(1990)을 수여했다.
안양 항일애국지사 7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국주옹(95세)은 안양 갈산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제17대 광복회장을 역임 중이다. 김국주옹은 광복군 소속으로 중국 서주와 안휘성 지역에서 연락책임자로 활동했고, 상해지구 공작활동에도 참여했다.
정부는 김국주옹에게 건국포장(1977)과 건국훈장애국장(1990)을 수여한 바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올해 두 차례 위로 차 김국주옹 자택을 방문한 바 있다.
한항길 지사는 1919년 3·1동이 한참이던 당시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학생단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광복 후에는 부천대학을 설립해 정심운동과 기술자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정부는 건국훈장애족장(1990년)을 수여해 그의 공훈을 기렸다.
비산동 출신 이영래 지사는 서이면 일동리(지금의 관양동 일대)에서 대한독립을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석수동 삼막골이 고향인 하영홍 지사는 1904년 9월 경기 시흥 일대에서 수천명의 농민항쟁을 주도하며 일제에 항거했다.
현재 이들 항일애국지사를 기리는 동상과 흉상은 자유공원 보훈광장, 안양역, 만안도서관, 석수체육공원 건너편 등에 건립돼 있다. 안양시장-시의원 등 지역 인사들은 매년 3·1절과 광복절을 맞으면 이곳에 찾아 참배하고 있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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