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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프라이빗 뱅커

프라이빗뱅커(PB)를 만나는 고객은 대기표를 뽑을 필요가 없다. 약속 시간에 맞춰 가면 직원이 정중히 방으로 안내한다. 방 안엔 푹신한 소파가 있고, 음료수도 서비스된다. 신상품에 가입할 땐 편히 앉아서 비밀번호 입력기의 음성 안내에 따라 몇 차례 비밀번호를 넣기만 하면 된다. 파생상품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한다고 치자. PB가 직접 상품을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서명을 받는다. 가입금액에 따라 사은품을 주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는 고객에겐 포도주, 골프를 좋아하면 골프공, 영화를 좋아하면 영화표를 준다. 고객의 취향 파악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생일 축하 카톡, 집으로 배달된 생일선물은 덤이다.

부동산 또는 상속·증여 등 세제정책에 변화가 생기면 따로 설명회를 갖기도 한다. 소수 부자들이 전문가와 질의응답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는 동안 다른 이들은 신문기사를 뒤지거나 인터넷을 검색한다. PB로부터 자산관리를 받는 부자들은 저절로 자본주의, 곧 돈의 힘을 느낀다.

PB는 스위스가 원조다. 스위스엔 창립 200~300년 된 프라이빗뱅크가 많다. 이들은 무한책임과 비밀엄수 같은 엄격한 규율로 전 세계에서 고객을 끌어모았다. 첩보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비밀계좌 창구는 스위스 프라이빗뱅크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극소수 부자만 상대하기 때문에 대중과는 거리가 멀다. 바우만, 보르디에르, 구츠빌러 등 이름조차 생소하다. 가끔 욕도 먹지만 신뢰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킨다.

국내 증권사 PB 한 명이 이른바 조국사태에 얽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고객이던 동양대 정경심 교수(조국 법무장관의 부인)가 집·사무실 PC에 손을 댈 때 관여한 혐의라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PB의 역할 범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참 한국적인 풍토다. 금융강국 스위스를 보면 답이 보인다. 스위스 PB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지금이라도 은행연합회 또는 금융투자협회 차원에서 PB 행동규범이라도 마련해야 할 듯싶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