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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민 칼럼] 20대가 조국에 버럭 화를 낸 이유

90년대생 새로운 주류 부상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청년 세대의 분노 다독여야

[정순민 칼럼] 20대가 조국에 버럭 화를 낸 이유
대통령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시절 탐독했다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 추천도서도 여러 차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지난해 여름휴가철을 앞두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김성동 작가의 '국수'가 화제를 낳았고, 올해 초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한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의 '축적의 길'도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최근에도 청와대 전 직원에게 책을 한 권씩 돌렸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1990년대생의 출현을 알린 '90년생이 온다'다. 문 대통령은 책에 동봉한 카드에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들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경험한 젊은 시절, 그러나 지금 우리는 20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라는 글도 함께 적었다. 이 책은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2위, 인터파크 3위, 예스24 6위를 기록 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대의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런 사실은 이달 초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관한 질문에서 20대는 30.4%가 긍정 평가를 한 반면, 이보다 많은 42.7%는 '잘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이들의 부정 평가는 50대(57.7%)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바로 위 세대인 30대(37.4%)나 40대(36.8%)에 견주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조 장관의 딸 입시의혹 등으로 분노를 표출했던 20대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90년생이 온다'를 읽다 보면 20대가 이번 사태에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헤아려 볼 수 있는 부분이 여럿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90년대생, 즉 20대는 '9급 공무원을 원하는 세대'다. 9급 공무원은 박봉에 일도 쉽지 않지만 정년이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복지도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만을 위해 9급 공무원을 꿈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취업준비생의 절반 가까이가 공시족인 까닭은 9급 공무원시험이 그나마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채용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90년대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정직함'을 꼽는다.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이란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의미의 '어니스티(Honesty)'보다는 진실성 혹은 온전함을 뜻하는 '인티그리티(Integrity)'에 가깝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에 대해 선배 세대들은 더러워도 꾹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지만 이들은 그런 일에 과감히 이슈를 제기하는 편이다. 과거처럼 거대한 이념이나 사회조직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내 곁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일에 개인적으로 맞선다. 이들이 조국 사태에 버럭 화를 낸 진짜 이유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기도 한 경제학자 우석훈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좋든 싫든 이제 한 시대가 끝이 났다"고 진단했다.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386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때가 됐다는 얘기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를 전망하며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과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청년들이 외치고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