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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60대 가장, 한국서 2대1 생체간이식으로 새 삶

칠레 60대 가장, 한국서 2대1 생체간이식으로 새 삶
칠레에서 한국을 방문해 두 딸로부터 기증받은 간으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알베르토씨의 병실에 가족들과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이 모여 퇴원을 축하해주고 있다. 왼쪽부터 알베르토씨 아내(첫 번째), 이승규 석좌교수(세번째), 막내딸 아니타 이시도라(여덟번째), 송기원 교수(아홉번째).


[파이낸셜뉴스] "무치시마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칠레에서 한국을 찾아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알베르토씨(남·62)는 귀국을 앞두고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 간 문맥과 담도 폐색으로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었던 알베르토씨는 자국과 미국에서도 수술이 어렵다는 설명과 함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요양병원으로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에콰도르 출신의 간이식외과 의사인 라울 오레아스의 추천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에 발견된 간경화와 간암은 심하게 진행된 상태로 간 문맥이 혈전으로 완전 폐쇄됐고 간암이 담도까지 침범하면서 담도 폐색에 의한 황달과 복수도 심했다.

기증자들의 간 크기 부족으로 1대1 생체간이식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뇌사자 간이식도 칠레 국내의 간이식 수준으로는 진행이 어려웠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다시 건강을 찾아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알베르토씨는 한국에서 첫째 딸과 막내 딸의 간 일부를 각각 이식받는 2대1 생체간이식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오는 10일 칠레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가 받은 세계 최초 2대1 생체간이식 수술법은 19년 전 말기 간질환 환자를 살리기 위한 대한민국 외과 의사의 집념으로 개발된 것이다. 알베르토씨에게 한국행을 추천했던 의사 라울 오레아스는 서울아산병원에서 2차례 간이식 연수를 받은 적이 있어 의료 기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추천했다.

그는 메일로 한 명의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간 일부를 이식 받는 1대1 생체간이식으로는 키 182cm에 몸무게 92kg 체격의 환자에게 기증할 수 있는 간의 크기가 작아 간이식 수술이 불가능하고 뇌사자 간이식도 간암의 광범위한 담도 침범과 문맥폐색에 의한 기술적인 문제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환자가 있다는 내용을 보냈다.

알베르토 씨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2명의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각각 간 일부를 제공 받아 시행하는 2대1 생체간이식 수술뿐이었다. 문제는 두 명의 간 기증자가 확보됐더라도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집도 할 수 있는 병원은 500건 이상 수술을 한 서울아산병원이 유일했다.

현재 세계에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이 가능한 센터는 몇 곳 없으며, 전 세계에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의 95% 이상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알베르토씨는 지난 3월 25일 한국을 방문했다. 입원 당시 알베르토씨는 간부전에 의한 황달 수치가 심하게 높았고 대량의 복수와 혈액응고 기능 장애, 간성혼수 증상까지 보였다. 혈액형이나 조직적합성 여부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첫째 딸 바바라 크리스티나와 막내 딸 아니타 이시도라였다.

지난 4월 8일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두 딸의 간을 기증받아 알베르토 씨의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첫째 딸은 간 좌엽 기증 수술로 최소 절개 기법을 이용해 복부에 10cm 미만의 작은 절개부위만 내어 간 일부를 절제했다. 막내 딸은 간 우엽 기증 수술로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로 흉터와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해 성공적으로 절제했다.

암이 침범한 담도와 폐쇄된 간 문맥 전체를 제거하고 두 딸의 간을 연결하는 수술은 쉽지 않았다. 장시간의 대수술 후 회복 상태를 지켜보며 오랜 기간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했다. 두 딸로부터 이식 받은 알베르토 씨의 간 기능이 예상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았다.

수술 당시 수혜자의 체격에 비해 두 딸의 간 용적이 작아 이식 후에도 간이 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어, 두 딸의 간 좌엽과 우엽을 각각 이식하기로 결정하는 등 수술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의료진들의 적절한 치료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고 7월부터는 일반병실로 옮겨 회복을 이어갔다.

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낮선 타지에서 가장의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가족들에게 평소에 편히 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외출 시 편의를 위한 차량도 지원하는 작은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알베르토 씨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간 일부를 기증한 두 딸과 오랜 기간 간병으로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서울아산병원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곳이다.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간이식팀 모든 의료진들과 간호사들은 평생 나와 가족들에게 감사와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기훈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환자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엔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 문맥폐색, 담도폐색뿐만 아니라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많이 차있었다"며 "하지만 우리의 생체간이식 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좋은 결과를 확신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간호팀, 병동 간호팀, 감염내과팀 등 의료진 모두가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지구 반대편 남미 칠레에서 가까운 미국을 가지 않고 한국을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간이식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며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기술이 전 세계 간이식계의 발전을 선도하고 전 세계 말기 간질환 환자가 믿고 찾을 수 있는 4차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