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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경찰이 학교, 직장 등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감정의 골을 '대화'를 통해 해소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사건 수사과정에서 '가해자가 어떤 혐의를 받는지'를 넘어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범죄 재발방지까지 중점을 둔 '회복적 경찰활동'을 서울·인천·경기남부·경기북부청 등 4곳의 지방청에서 시범 운영했다. 경찰은 '성과가 있다'고 판단, 내년부터 '회복적 경찰활동'을 전국으로 확대 적용해 검찰의 '형사조정제도', 법원의 '화해권고제도'와 마찬가지로 회복적 사법의 역할에 일조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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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접수 전 단계서 17건 종결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4월 30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5개월 간 '회복적 경찰활동'에 접수된 76건 가운데 총 54건은 조정 완료시켰다. 이 가운데 22건은 절차가 진행 중이다.
특히 사건 접수 전 회복적 대화 절차를 통해 종결된 건은 총 17건으로, 이는 전체 조정 완료된 사건의 31.5%에 달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간 서로의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대화로 공유함으로써 상호간 입장 이해를 돕고 오해를 풀어가는 회복적 취지대로 사건이 정식으로 접수되기 전 종결시킨 셈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전문적인 대화기관의 주도로 경찰관 입회 하에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비롯한 가족, 교사 등 이해 당사자 간 대화를 이끌어내 '관계 회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제도다. 대화는 사전 모임과 본 모임 모두 합쳐 총 3회에 걸쳐 평균 6.2시간 동안 진행된다.
대화를 통한 회복적 절차가 완료되면 가해 및 피해자는 합의문을 쓰게 되는데, 경찰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결과 보고서를 수사 서류에 첨부해 검찰·법원에서 형량 등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될 경우 경찰서장 주관으로 훈방조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폭행사건의 경우에도 상호간 합의가 이뤄져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경찰서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송치되기도 한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특히 학교폭력 사건에서 효과를 보였다. 회복적 절차에 접수된 76건 가운데에도 학교폭력이 23건(30.3%)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로 지낸 A군(15·가해자)과 B군(15·피해자)은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다. 같은 반이 된 이들은 교실에서 장난치다 A군이 B군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격하고 팔을 발로 차는 등 폭력을 가해 골절상을 입혔다.
■학교폭력에 적용.."효과 검증"
이를 알게 된 B군의 부모는 A군을 형사고소까지 생각하게 되자 담임교사가 학교전담경찰관(SPO)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A군과 B군의 부모, 담임교사 등이 참여한 회복적 대화가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A군은 대화를 통해 B군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깨닫게 됐다. 이후 A군은 B군에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차후 보호와 관리를 담당하겠다며 자처하기까지 했다.
이에 피해자 측도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혔다. 학교 측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출석정지' 대신 '사회봉사 처분'으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같은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13건), 이웃·동료 간 폭행·협박(11건) 등도 회복적 절차에 접수됐다.
야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논다는 이유로 벽돌을 던진 C씨(67)는 현장에 있던 3세 아동의 왼팔에 상해를 입혔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2년여 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빌라 임대가 이웃 어린이집의 소음과 무단주차 탓에 어렵게 됐다고 생각해 수 차례 어린이집 원장에 욕설을 하고, 시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아동 아버지, 어린이집 원장이 참여한 대화모임을 3차례 실시했다. 또 가해자의 사과 동영상을 어린이집 원생들에게 상영하고, 전문기관의 진행 아래 가해자가 치료비를 변제하는 데 합의했다.
어린이집 원장도 주차 안내판을 어린이집 앞에 설치하고 야외 놀이터를 이전하겠다고 합의했다.
경찰 관계자는 "갈등의 근본 원인인 소음과 주차 문제 해결을 위해 어린이집 측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힌 만큼 추가 범죄는 예방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은 "회복적 사법제도는 사건이 처음 접수되는 경찰 단계에서 갈등 해결과 조정을 위한 제도"라며 "사건 당사자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더 큰 범죄로 번지기 전에 예방하자는 차원으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통한 재발방지에 역점을 두고 활성화 시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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