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공분 산 공소시효, 이대로 괜찮나(下)
공소시효 만료 따른 수배 해제
5년간 2만3215건… 하루 12건꼴
살인 등 강력범죄도 909건 달해
"과학 수사 발달, 강력범죄는 폐지"
"적용 범위 등 논의 더 필요" 의견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이춘재(56)가 피의자로 정식 입건됐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였던 만큼 이씨를 용의자 신분으로 남게 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그의 책임을 묻긴 어려울 전망이다. 만료된 공소시효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제 범죄자 속속 등장하지만
1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11월 15년 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모씨(54)를 검찰에 송치했다. 이씨는 지난 2004년 8월 서울 강동구에서 주부를 흉기로 살해하고, 사흘 뒤 강북구에서 여성 2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이씨 역시 이춘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건으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다만 이씨의 경우 이춘재와는 달리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직전에 기소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수사기법의 발달로 공소시효가 만료된, 혹은 공소시효 만료를 눈앞에 둔 사건의 용의자들이 속속 수사망에 걸리면서 공소시효가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공소시효 만료에 따른 수배 해제는 2만3215건이다. 연 평균 4643건, 날마다 12건씩 수배가 해제되는 셈이다. 지난해에만 4252건의 수배가 해제됐다. 전년도에 비해 83% 증가한 수준이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사기·횡령 등으로 1만1164건이었다. 4대 강력범죄의 경우 살인이 6건, 강도 26건, 절도 384건, 폭력 493건 등 총 909건에 달했고, 강간죄의 경우 14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수배 해제됐다.
특히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2015년 7월)'이 시행되기 직전인 2014년에도 3명의 용의자가 공소시효 만료로 수배 해제됐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 폐지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뤄졌어야 했다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오랜 시간 찬반 논쟁을 이어왔던 공소시효 문제지만, 최근 들어 강력범죄에 한해 폐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태완이법 도입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커져왔던 폐지의 목소리는 이춘재의 등장으로 우리사회 전체로 들불 같이 번지고 있다.
■"강력범죄 폐지"vs."더 논의해야"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4대 강력범죄, 즉 살인과 강간, 방화, 강도 등의 죄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정말 아닌 것 같다"며 "강력범죄만큼은 공소시효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기법과 과학기술 등 수사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인권 의식도 변화됐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맞게 강력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공소시효 폐지 논의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도 여전히 많다. 공소시효 폐지의 정당성과 적용 범위 등을 고려했을 때 심도있는 논의가 장기간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관련 논의가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아직은 공소시효 폐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이르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며 "판결의 정확도를 높인다는 측면이나 범죄를 저지른 이의 심리적 처벌 등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고, 공소시효 폐지가 이뤄질 경우 그 범위에 대한 논의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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