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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조사 첫단계부터 의료인 입김.. '기울어진 운동장' 억울한 환자들

(上) 의료분쟁 조정 공정성 논란
사망 등 중대과실 발생땐
병원 동의없이 조정 절차 밟지만
중재원 감정결과 좌우하는
상임감정위원이 '의료인'
중립적 운영 가능한 장치 필요

의료사고 조사 첫단계부터 의료인 입김.. '기울어진 운동장' 억울한 환자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가수 신해철이 불의의 의료사고로 사망한 지 어느덧 5년이다. 신해철은 2014년 10월 복강경을 이용한 위장관 유착박리술과 위 축소술을 받은 뒤 복막염 증세를 보이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다 숨졌다. 특히 사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환자 동의 없이 추가 수술이 이뤄졌고 적절한 진단이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하지만 신씨의 사망 이후에도 의료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고,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기획 보도를 통해 계속되는 의료사고의 원인과 해결방안 등을 짚어봤다.

고(故) 신해철씨의 죽음으로 의료사고를 둘러싼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의료계를 향한 불신은 여전하다. 산부인과에서 환자를 착각해 동의 없는 낙태수술을 진행하는가 하면, 잘못된 수혈을 통해 환자를 사망케 하는 등 충격적인 의료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신해철의 유산인 '신해철법' 시행으로 의료분쟁 조정 신청 건수가 크게 늘었지만, 조정 과정에서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분쟁 조정 5년 새 70% 급증

22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의료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4년 1895건이었던 의료분쟁 조정 신청은 5년 만인 지난해 2926건까지 늘었다. 진료 과목별로는 정형외과의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가장 많았고, 신경외과와 외과, 산부인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5년 동안 조정을 거쳐 의료기관으로부터 환자들이나 유가족이 받은 돈은 330억원 수준이다. 100만~300만원의 보상금 지급이 가장 많았고, 5000만원 이상의 보상금을 지급한 대형 의료사고도 102건이나 됐다. 특히 지난해 5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의 보상금을 지급한 대형 의료사고의 경우 전년대비 180%나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분쟁 조정건수가 늘어난 데는 지난 2016년 11월 30일 시행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신해철법'의 영향이 크다. 신해철법은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 등 일부 중대과실 사건에 대해 병원 동의가 없어도 '조정절차 자동개시'를 강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명칭과는 달리 이 법은 신해철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신해철 사건은 중재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수사기관과 법원의 민·형사상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유명가수였던 신해철의 죽음으로 의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신해철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재원의 양적성장에도 불구, 의료사건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붙는다. 현재의 중재위 구성상 조정 과정에서 의료인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 밖에 없어 조정절차가 의료인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료사고의 사실조사를 수행하는 감정부는 의료인 2명, 법조인 2명, 시민단체 등 일반인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감정결과를 좌우하는 상임감정위원이 의료인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료인의 시선에서 감정결과가 정리된다는 것이다.

신해철 유족의 변호를 맡기도 한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의 박호균 대표변호사는 "일선 변호사 입장에선 중재원의 결정을 사실상 좌지우지 하는 감정위원들이 최근 의료계에 편향적인 감정결과를 내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실제로 중재원에서 '아무런 문제 없다'는 감정결과만 얻고, 향후 소송제기도 못하도록 봉쇄당하는 이중고를 겪는 피해자들의 상황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 조사 첫단계부터 의료인 입김.. '기울어진 운동장' 억울한 환자들
■"중립적 감정결과 위한 입법 필요"

문제는 조정위원의 보조자에 불과한 감정위원의 판단이 조정 성립은 물론, 조정 결렬 후 법원 판결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박 변호사는 "감정위원도 의료인이어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감정결과를 도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며 "훈련받지 못한 감정위원들의 편향적인 시각에 따라 들쑥날쑥한 감정결과가 피해자의 의료사고 입증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국회 차원에서 감정제도를 중립중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인 감정위원은 조정위원에게 참고적 조언을 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취지다. 박 변호사는 "감정결과가 바람직하고, 중립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법조인 중심으로 제도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며 "의료인 감정위원은 의학적 사안에 대해 평가하는데 그치고, 이를 넘어 잘잘못이나 규범적 평가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