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서준호(뒤쪽) 책임연구원과 김지환 박사후연구원이 나노역학소자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국내 연구진들이 공동으로 일반 금속이나 반도체 등과 다른 특성을 지녀 '별난 물질'로 불리는 위상물질의 활용성을 높일 측정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성과는 위상물질 기반 나노역학소자 연구의 세계 최초 결과로서, 위상물질이 이론을 넘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의 기반인 양자소자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는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서준호 책임연구원과 쾰른대 김건우 연구위원 공동연구팀이 나노역학소자의 공진 주파수를 분석해 위상물질의 특성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서준호 책임연구원은 "대표적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전까지 실리콘이라는 반도체 물질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만 수십 년이 걸렸다"며 "이번에 개발한 역학적 공진 기반 측정기술 또한 큐빗, 스핀트로닉스 소자 등 미래 양자소자에 활용할 수 있는 위상물질의 특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한 위상물질(topological matter)은 위상학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물리학에 도입한 것으로 이론에만 존재하는 이 별난 물질을 현실로 가져오는 연구가 활발하다.
위상학적 상태를 가진 위상물질은 '구멍의 수'로 상태를 구분한다. 찰흙으로 만든 공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위상학의 세계에서 구멍이 없는 공과 한 개 있는 도넛은 마치 고체와 액체처럼 다른 상태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지는 도넛과 다르게 보이지만 구멍이 1개이므로 위상학적으로는 같다고 표현한다.
위상물질로 제작한 전자소자는 양자들의 파동이 같이 가는 '양자 결맞음' 상태를 가질 수 있어 양자소자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극히 이론적인 개념이었던 위상학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위상물질의 특성을 완벽히 이해해야만 한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1000분의 1 굵기의 위상물질 나노선 기반 역학소자를 제작, 위상물질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전자상태밀도에 대한 신개념 측정 기술을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위상절연체인 비스무스셀레나이드(Bi2Se3) 화합물로 나노선을 만든 다음, 금속 박막 전극에서 수십 나노미터 떨어져 진동하도록 해 전극을 통해 역학적 공진을 유도 및 측정했다.
나노역학소자는 나노선의 양쪽을 고정하고 띄운 형태로 기타 줄을 연상시킨다. 기타 줄을 튕기면 공진하듯 나노선도 공진을 발생시킬 수 있고 이 때 물질의 위상상태, 즉 '구멍의 수'를 알아낼 수 있다.
극저온에서 나노선 표면의 전자는 양자 결맞음이 잘 유지돼 양자간섭을 보인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위상물질의 전기적 특성은 물론 상태밀도에 따른 공진주파수 변화까지 동시에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와 같은 실험결과가 나노선의 진동과 그 표면에 존재하는 전자계의 상호작용에 의한 양자현상에 기인함을 이론 계산을 통해서 명확히 밝혀냈다.
KRISS와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10월 게재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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