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효과, 1년을 못갔다..재선가도 악영향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during a campaign rally in Lexington, Ky., Monday, Nov. 4, 2019. (AP Photo/Timothy D. Easley)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 관세가 쇠락하는 미 철강산업을 되살리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미 철강산업은 25% 관세가 매겨지기 시작한 지난해 반짝 회복세를 보였지만 올들어 감원과 구조조정 속에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온갖 반대 속에서도 2016년 대통령 선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철강업계의 지지를 이어가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수가 철강을 소비하는 미 업계 전반은 물론이고 혜택이 돌아갔어야 할 철강산업에도 결국에는 별 효과를 미치지 못한 셈이다. 다시 일자리를 잃은 철강산업 노동자들이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다시 찍을지도 알 수 없게 됐다.
AP통신은 4일(현지시간) 지난해 3월 트럼프의 수입 철강 25% 관세는 미 철강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조처였지만 그 효과가 1년을 채 가지 못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해 철강 관세과 반짝 효과를 내며 제철소가 재가동되고 철강 산업 일자리가 늘었지만 올들어 미 철강 산업은 다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주식 투자자들이 철강 주식을 내던지면서 불길한 기운이 감돌더니 철강 가격, 철강업체 실적, 철강 업계 고용 모두 변변찮은 상태다. 올 상반기 US스틸, AK스틸, 스틸 다이내믹스, 뉴코 등 미 주요 철강업체 순익은 반토막났고, 공장가동률도 7월과 8월 트럼프 목표치인 80%에도 못미쳤다.
철강관세가 부과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2월 이후 미 철강산업 고용 증가폭은 1800명에 그쳤다. 미 전체 고용자 수가 1억52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통계 오차 수준의 미미한 증가폭이다. 반면 이 기간 미 전체 고용은 400만명 가까이 늘었다. 철강업계 노동자 수는 5년 전보다도 1만명 적은 상태다.
철강 수요업체들은 철강관세를 피해 생산시설을 아예 해외로 옮기거나 플라스틱, 복합재료 등으로 철강을 대체하고 있다. 조지메이슨대 산하 싱크탱크인 머케이터스 연구소 선임 연구위원 크르시틴 맥대니얼은 "이런 고관세에도 불구하고 철강산업은 이점을 취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철강산업 재기 실패는 트럼프의 내년 재선가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2016년 대선에서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컨신 등 핵심주 표심을 철강산업 부활 구호로 끌어당기는데 성공하면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때문에 철강산업 재침체는 내년에도 대선 승리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될 이들 주의 표를 끌어모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록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트럼프가 외국 철강과 싸웠다는 동정표를 받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표심이 트럼프를 떠날지 알 수 없게 됐다.
미 철강산업이 다시 가라 앉게 된 배경은 수요 공급 모두에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트럼프 관세효과에 대한 철강업체들의 오판이 큰 영향을 미쳤다. 관세 초기 철강가격이 일부 품목의 경우 2배 가까이 폭등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신이 난 철강업체들은 껐던 용광로를 다시 켜고 집으로 돌려보냈던 노동자들도 다시 불러 들이면서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급확대는 때를 잘못 만났다. 트럼프의 관세·무역전쟁이 세계 경기둔화세를 부르고, 기업들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면서 투자가 위축돼 철강수요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공급과잉은 수요 둔화와 겹치며 철강가격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관세효과로 지난해 7월 톤당 1006달러까지 치솟았던 열연강은 지금은 557달러로 관세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철강업계 소송을 도맡아 온 변호사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앉히며 철강산업 부활을 추진하던 트럼프가 결국 대부분 반대, 일부 찬성 속에 밀어붙인 철강관세 정책 역풍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철강산업 부활의 경제적 효과는 미미한 반면 잠재적 피해는 막대하다. 철강산업 전체 고용은 14만2000명으로 미 주택개량자재 소매업체 홈디포 직원수 40만명에도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새 철강 공장들은 자동화돼 예전만큼 많은 직원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철강 소비 업체들의 고용은 철강업체의 14배에 이르는 200만명이나 된다. 소탐대실인데다 철강업 고용을 늘리겠다는 소탐마저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트럼프 철강관세는 캐나다, 멕시코, 한국 등 미국에 철강을 수출하는 주요 동맹을 압박한 대신 당초 목표로 했던 중국의 철강과잉설비 해소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미 수출이 막혔지만 중 철강은 여전히 전세계 철강시장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3%인 미 철강과 대조적이다. 보수진영 싱크탱크인 미기업연구소(AEI)의 마크 페리 연구위원은 "(관세가)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떤 종류의 미 철강산업 부활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하이오주립대(OSU)의 네드 힐 경제학 교수는 "경제학을 이해하는 이라면 트럼프 철강관세가 1년 이상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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