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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같은 바다.."해양주권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팁니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해경 서해5도특별경비단
칼·쇠망치 날아드는 전쟁터 같은 바다
불법조업 중국어선 갈수록 지능화
선체에 거북선처럼 쇠창살 설치하거나
엔진 3∼4개 달아 도주할때 속력 높여
서특단, 매복작전·위장전술 펼치며 검거
목숨 건 단속으로 영해침범 30%로 감소

국가경제 발전과 사회의 안전 등을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 하지만 기피하는 직업. 우리 사회는 3D 직종이라고 일컫는다. 3D는 'Difficult'(어렵고), 'Dirty'(더럽고), 'Dangerous'(위험한 일)를 뜻한다. 1988년 이후 국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3D 직종 기피현상은 결국 산업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과 노동생산력을 낮추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또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 노동력으로 일자리 부족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주위의 산업 및 사회 역군들을 발굴해 이들이 국가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이들 '보이지 않는 영웅'들의 직업윤리 의식과 만족도, 자기 성취도, 직업적 특수성 및 애로사항 등을 짚어보고 이를 연속 시리즈물로 기획보도함으로써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고자 한다.
전쟁터 같은 바다.."해양주권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팁니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서해5도특별경비단의 고속단정이 불법조업 외국어선을 단속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서특단은 대형 3척, 중형 7척, 방탄정 3척 등 총 13척의 단속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 인천=한갑수 기자】 지난해 5월 17일 새벽 2시.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불법조업을 하다가 정선명령을 무시하고 NLL 방향으로 달아나는 중국어선에 해양경찰이 접안을 시도했다. 해경 방탄정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선체 외부에 쇠파이프를 깎아 만든 뾰족한 쇠창살이 설치됐다. 자칫 무리하게 접안을 시도하다가 쇠창살에 박혀 방탄정이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했다. 해경이 방탄정의 방향을 살짝 틀어 쇠창살을 옆으로 밀고 접안을 시도하자 칼과 낫, 쇠망치가 날아왔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NLL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아 10분 내 상황을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연장을 간신히 피해 선박에 올라갔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타실 문이 두꺼운 철판으로 막혀 있었다. 우선 선원들을 붙잡아 손을 묶어 놓고 메탈톱으로 문을 절단해 떼어낸 후 선박을 정지시킬 수 있었다.
전쟁터 같은 바다.."해양주권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팁니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서특단 특수진압대에서 불법조업 외국어선 단속 업무를 수행하는 신준상 팀장.


■중국어선 흉폭·지능화…해경 목숨 위협

"매일매일이 전쟁 상황입니다. 특공대라는 자부심과 해양주권을 수호한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못합니다." 13일 서해5도특별경비단(이하 서특단) 신준상 경사(40·특별진압대 4팀장)는 불법조업 외국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위험하고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날로 조심성이 늘어나고, 신중해지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들을 일망타진하려면 매복은 물론 위장전술까지도 필요하다는 게 신 팀장의 설명이다.

지난 4월에 있었던 검거작전이 이런 경우다. 4월 30일 밤 11시, 해경은 중국 불법조업 어선이 나타난 해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작업을 하는 것처럼 속이며 때를 기다렸다. 바다 한가운데 중형 방탄정을 고정시켜 놓고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근처에 300m의 장애물과 그물망도 설치했다. 중국어선들이 눈치를 보다가 해경 함정이 따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정 지점까지 내려왔다. 그런데도 해경 함정이 꼼짝 않고 가만히 있으니 안심한 중국 선원들은 다시 조금 더 내려왔다. 이렇게 5일 밤낮을 기다렸다 중국어선을 안심시켜 가까이 오게 만든 뒤 5월 6일 새벽 1시께 순식간에 검거했다. 해경이 성능이 뛰어난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잡을 때 자주 쓰는 매복작전이다.

서특단은 서해5도 인근의 NLL과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 외국어선을 검거·나포하는 단속 업무를 맡고 있다. 중국어선들은 산둥반도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우리 해역 어장으로 넘어와 치어까지 마구 잡아 어장을 황폐화시키고, 단속 해경에게 부상을 입히고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 불법조업 어선은 꽃게 조업철인 4∼6월과 9∼12월에 특히 많다. 특수진압대는 연평도와 대청도에 대기하고 있다가 서특단 상황실에서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방탄정에 무기·탄약을 싣고 신속하게 출동한다. 연평도 인근은 30노트(시속 55㎞)로 달려 대개 30분∼1시간, 대청도 인근은 1시간∼1시간30분을 나간다.
전쟁터 같은 바다.."해양주권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팁니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나포되면 범칙금 부과 필사적 저항

불법조업 외국어선이라고 해서 모두가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아니다. 신 팀장은 "10척 중 3∼4척이 강하게 저항한다. 나포되면 최고 3억원까지 범칙금이 부과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필사적이다. 나머지는 특수진압대가 자신들의 배에 올라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예전 불법조업 중국선원들은 해경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칼과 쇠망치는 물론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던졌다. 그러나 서특단 창단 이후 불법어선들의 저항 형태가 지능화됐다. 위험한 연장을 던지는 것보다는 방탄정이 불법어선에 접안하지 못하게 선체에 방해물을 설치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선체에 거북선처럼 쇠파이프를 날카롭고 뾰족하게 만들어 쇠창살처럼 설치하거나 철판으로 옹벽을 쌓아서 특수진압대가 접근하거나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차단한다는 것. 또 거북선처럼 만든 쇠창살을 제거하고 어렵게 선박에 올라가더라도 조타실 문을 철판으로 덧대 뚫리지 않도록 만든 경우가 많다.

이럴 땐 배척(못뽑이나 지렛대로 쓸 수 있는 연장)을 이용해 문을 뜯어내거나 메탈톱 또는 산소절단기로 철판을 절단해야 한다.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선박이 NLL로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신 팀장은 "불법조업 외국어선이 우리 영해로 많이 내려왔으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제압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대개 NLL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등선해 조타실 철문을 뚫고 엔진을 정지시키는 데까지 5∼10분 내에 끝마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마저도 불법조업 외국어선에 접근해야만 가능하다. 불법조업 외국어선의 성능이 좋아져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진압대 방탄정은 선체가 7∼8t에 기름을 가득 적재하고, 거기다 장비를 갖춘 대원들까지 타면 10t이 넘는다. 엔진은 250마력 3개를 장착한 750마력이다.

중국어선들 중엔 3∼4t급에 엔진이 3∼4개 달려서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고속정도 많다. 100m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나포하려고 따라가도 속도가 워낙 빨라 추격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뛰는 놈 위에 나는 해경

지난 2011년 소청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 나포작전 중 이청호 경장이 선원들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 뒤로도 2015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해경 2∼4명씩은 불법조업 어선 단속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불법조업 외국어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저항이 점점 거세지자 이에 강력 대처하기 위해 2017년 4월 서특단이 창설됐다. 서특단은 총경을 단장으로 경찰관 410명, 함정 13척(대형 3, 중형 7, 방탄정 3)을 보유하고 있다. 서특단 내 대형·중형 함정에 소속된 특수기동대와 단독 편제의 특수진압대가 고속단정이나 방탄정을 타고 불법조업 외국어선을 단속한다.


정영진 서특단 단장은 "불법조업 외국어선들은 서특단 창단 이전에는 수시로 우리 영해를 침범했지만 서특단이 생겨 단속이 강화돼 검거율이 높아지면서 그 수가 30%가량으로 대폭 줄었다"고 지적했다.

서해5도 인근의 NLL과 EEZ에 출현한 불법 외국어선은 하루 평균 2015년 188척, 2016년 144척이었으나 서특단 창설 이후인 2017년 59척, 2018년 52척, 2019년 63척으로 감소했다. 우리 영해로 넘어온 불법 외국어선을 영해 밖으로 쫓아내는 비율은 10% 안팎, 나포비율은 0.1%에 불과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kapsoo@fnnews.com 한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