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인도·태평양전략서 한국 빠질라"… 美, 한일 갈등 중재보다 한국 압박

한일 '마이웨이'에 한미 갈등 확산
지소미아 종료 리스크 한국이 감수
전문가 "정부, 플랜 B·C 준비해야"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가 사실상 전략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데드라인'(23일 0시)만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미·일 안보공조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중재를 예상하고 벼랑끝 전술을 폈지만 오히려 한·미 동맹 훼손 우려가 나오는 등 상황이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중재 소극적…플랜B·C 준비해야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키로 한 배경은 일본이 안보상의 신뢰를 이유로 지난 8월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측의 거듭된 철회요청에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강행하자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와 군사정보를 교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같은 달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다.

일본의 경제제재에 맞서 정부가 꺼낼 수 있는 파괴력 높은 카드였고, 실제로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의 적극적인 관심도 초래했다. 한·일 갈등에 미국이 나서도록 하는 전략도 어느 정도 먹혔던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이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미국은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미·일이 협조해야 하고, 지소미아는 무조건 연장돼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결국 구체적 방안을 취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정부가 플랜B, 플랜C를 준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사실상 한·일 갈등에 개입하지 않았고 애초에 그럴 의사조차 없었다. 지소미아라는 벼랑끝 전술을 택했지만 상대방은 긴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만 벼랑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지소미아 한·미 갈등으로 확산되나

더 큰 문제는 중재 역할을 기대했던 미국과 우리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잇따라 방한했던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등 미국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은 모두 우리 정부에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의 대응에 변화가 있기 전에는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15일 에스퍼 장관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과 군사정보 공유는 어렵다"며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면전에서 거절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하더라도 한·미·일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라며 "미국이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을 우리가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미 간에 신뢰가 깨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 관계에서 미국의 의지에 공개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강행할 경우 이에 따른 리스크를 정부가 감수할 수밖에 없다.

■美, 아태전략서 한국 이탈 우려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를 인도·태평양전략과 연계시키고 있다. 자신들이 구상한 큰 그림에서 한국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을 짜고 있는데 지소미아가 핵심 중 하나"라며 "그런데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시킨다는 것은 미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에 한국이 안 들어오겠다는 의도로 읽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4개국 중 호주는 너무 멀고, 인도는 적극적인 동참 의지가 없다. 현실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전략의 핵심인데 한국이 이탈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이 강하게 나온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위치상으로 한국이 중국 견제가 가능하고 군사적으로 강하다"며 "핵심동맹인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들고 나오기 때문에 미국이 우려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