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파이낸셜뉴스 강근주 기자] 하얀 눈꽃이 온누리를 장식하는 겨울이 왔다. 겨울은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있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신년을 다짐하려는 여행객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내로라하는 명산과 유구한 유적이 많은 경기북부는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설경을 즐기려는 여행객으로 장사진을 이루곤 한다. 이에 경기도가 자연을 벗으로 삼고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경기북부 겨울산성 여행지’ 5곳을 추천했다. 연천 호로고루, 양주 대모산성, 파주 월롱산성, 포천 반월산성, 고양 북한산성 등이 바로 그곳이다.
김효은 경기도 평화대변인은 28일 “산성은 호국정신이 담긴 역사적 성지이자, 조상의 숨결이 배어있는 삶의 터전”이라며 “설경과 역사가 어우러진 경기북부 산성에 올라 선조의 지혜를 느끼며 올해를 감무리하고 새해의 소망을 그려볼 수 있는 겨울산성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연천 호로고루와 임진강. 사진제공=경기북부청
◇ 연천 호로고루-임진강변 도도히 감도는 ‘고구려 기상’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연천군을 대표하는 고구려 3대 성 중 하나인 ‘호로고루’는 장남면 원당리 임진강변에 위치한 삼각형 형태의 평지 성터다. 약 4세기 백제-신라와 임진강을 두고 패권을 다투며 남진정책을 펼치던 고구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수막새, 벼루, 금동불상 등 고구려 시기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성벽 아래 흐르는 강은 비교적 수심이 깊지 않아 갈수기에는 도보로도 충분히 건너갈 수 있다. 이로 인해 분단 전까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최적의 육상교통로 중 하나였다. 특히 수십만년의 시간이 빚은 주상절리의 빼어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성 좌우로 20m에 달하는 높은 절벽이 형성돼 있어 과거 천혜의 요새임을 짐작케 한다. 탁 트인 강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건지기에도 좋다.
주변에는 호로고루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홍보관이 위치해 있으며, 인근 임진강 수계를 따라 동쪽의 파주 칠중성에서부터 서쪽의 은대리성까지 고구려 산성 여행도 추천한다.
파주 월롱산성. 사진제공=경기북부청
◇ 파주 월롱산성-경기북부의 그랜드 캐년
파주시 월롱산 9부 능선에 축조된 ‘월롱산성’은 시야가 매우 넓어 정상에 오르면 임진강과 한강, 파주 평야는 물론 날이 맑으면 멀리 강화도와 북한산, 관악산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어 예로부터 천연요새로 평가됐다.
월롱산성은 산 정상부 능선을 머리띠를 두르듯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20m가 넘는 자연암벽을 최대한 활용해 축조됐다. 외성 규모만 해도 둘레가 1300m나 된다. 안타깝게 현재는 성벽과 성문터 등은 많이 유실된 상태다. 2003년 조사 당시 백제계 유물인 격자문토기가 출토됨에 따라, 삼국시대 초인 한성백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월롱산성을 통해 고구려의 남하를 막고, 한강과 임진강을 통한 대(對)중국 교역망을 장악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등산객 사이에선 한국판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으로 유명하다. 짙은 황토색의 기암절벽이 우뚝 서 있어 그 기세가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비견될 만하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국적인 산세만이 아니라 주위 경관도 수려해 산을 오르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인근에는 고려 현종이 요나라와 전쟁 당시 머물렀다는 절 ‘용상사’, 청백리로 유명했던 백인걸 선생을 추모하고자 세운 ‘용주서원’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포천 반월산성. 사진제공=경기북부청
◇ 포천 반월산성- 궁예의 마지막 꿈
포천시 군내면에 위치한 반월산성은 청성산 정상부 일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포천 내에선 가장 규모가 큰 삼국시대 산성이다. 성 모양이 반달 형태를 띠어 ‘반월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반월산성은 명성산, 여우고개 등 포천의 다른 명승지와 마찬가지로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왕 궁예의 전설로 유명하다.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마지막으로 반격을 시도하다 패했다는 설화가 전해져온다.
궁예가 쌓았다는 전설과는 달리, 백제-고구려-신라 유물이 쏟아져 나와 최초 축성 시기가 삼국시대로 앞당겨졌다. 실제로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이라고 새겨진 기와 파편이 이곳에서 출토됐다. 마홀(馬忽)은 고구려에서 부르던 포천의 과거 지명이다.
포천의 진산(鎭山) 역할을 해왔던 만큼, 반월산성 길을 따라 걷다보면 포천 시내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승용차로 반월산성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고, 해맞이 명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주변에는 수호신을 모신 ‘애기당지’, 포천 유림의 혼이 담긴 ‘포천향교’, 나들이하기 좋은 ‘청성역사공원’, 포천 문화예술의 중심 ‘반월아트홀’ 등이 소재해 있다.
양주 대모산성 성벽(복원). 사진제공=경기북부청
◇ 양주 대모산성- 신라 삼국통일 정신을 찾아서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대모산성’은 대모산의 정상부를 에워싸는 형태로 지어진 테뫼식 산성으로, 일명 ‘양주산성’으로도 일컬어진다. 축조 시기는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삼국시대로 추정되며, 일각에선 삼국통일 이후 신라가 당나라와 혈전을 벌여 승리했던 ‘매소성(또는 매초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초 축성 당시 모습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고, 축성기법이나 성의 구조 등을 알 수 있어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남은 성문의 모양이 신라계 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문(懸門)’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일반 성문과는 달리 성벽 가운데에 구멍을 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성내로 진입할 수 있게 한 문으로, 그만큼 대모산성이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양주의 진산(鎭山)인 불곡산에서 홍복산으로 뻗어가는 산줄기 사이에 있어 이 코스를 따라 종주하는 등산객이 많다. 대모산 정상부에 오르면 불곡산의 빼어난 산세는 물론 너른 백석읍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불곡산 보루, 도락산 보루 등과 함께 양주분지 일대의 산성 찾기 투어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양 북한산성 상고대. 사진제공=경기북부청
◇ 고양 북한산성- 중흥을 꿈꾼 숙종의 수도방위사령부
고양시와 서울시에 걸쳐 있는 ‘북한산성’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등 2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병풍처럼 아우르는 총 둘레 약 13km 대규모 포곡식 산성이다.
북한산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강유역을 수호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백제 개로왕은 이곳에 처음으로 토성을 쌓았고, 삼국통일 기반을 닦은 신라 진흥왕이 이곳에 순수비를 세웠다. 고려 때에는 최영 장군이 중흥산성에 주둔하며 왜구 침입에 방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이 4만여명의 장정과 승려를 동원해 개축한 것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다시 겪지 않겠다는 다짐의 결과물로, 지금도 유사시 성을 수비했던 승군(僧軍)이 머물던 서암사의 터가 남아있다.
특히 삼각산이라고 불리던 과거부터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한반도 오악(五嶽)으로 꼽힐 정도로 산세가 웅장하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문화재와 사찰도 많다. 중성문, 산영루, 훈련도감 유영지, 중흥사, 태고사 등 각종 문화재는 물론 숙종과 영조가 찾았다던 ‘북한산성 행궁지’를 둘러보며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과거 산성 마을 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북한동 역사관’도 놓칠 수 없는 장소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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