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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또 울린 디플레 경보음, 또 외면하는 정부

GDP물가 최대폭 떨어져
선제대응 기회 놓칠 수도

디플레이션 경보음이 또 울렸다. 이번엔 GDP(국내총생산)디플레이터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4분기 GDP디플레이터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 20년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GDP디플레이터가 3·4분기까지 4분기 내리 하락한 것은 1961년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GDP디플레이터는 국가경제 전반의 물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눠서 얻는다. 앞서 통계청이 내는 월별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미 몇 차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통계청 수치를 보나 한은 수치를 보나 디플레이션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저성장과 저물가가 결합된 디플레이션은 경제 저혈압이다. 똑 부러진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는다. 이웃 일본이 반면교사다. 잃어버린 10년은 20년으로 연장됐다. 보다 못한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노믹스라는 고강도 처방을 내렸지만 일본 경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의 터널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플레는 치료가 어렵다. 따라서 예방이 최선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당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늘 일본 사례를 염두에 뒀다. 버냉키는 일본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속적인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라는 대담한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그 덕에 미국 경제는 되살아났고, 디플레 우려도 나오지 않았다.

우린 어떤가. 정부와 한은은 디플레라는 말만 나와도 경기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말한 기조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한은도 우리 경제가 디플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 손사래를 친다. 이래선 디플레에 선제대응은커녕 제때 적절한 대응조차 어렵다.

그보다는 디플레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에 걸맞은 정책을 펴는 게 현명하다. 그래야 선제대응 카드를 적절한 타이밍에 쓸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뉴욕시립대)는 9월 서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을 때 신중한 기조는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란 뜻이다. 그는 대응책으로 확장적 재정과 제로금리를 거론했다. 인구구조 면에서 한국은 일본과 판박이다.
출산율만 보면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일본은 어어 하다 당했다. 이러다 우리도 같은 길을 걷게 될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