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광화문 앞에는 관청가가 조성돼 있었다. 이른바 육조거리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동쪽(오른쪽)으로는 의정부·이조·한성부·호조가 있었고, 서쪽(왼쪽)엔 삼군부·사헌부·병조·형조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궐외각사(闕外各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미 군정기를 거치면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지금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자리에는 사헌부와 병조가 있었다. 이 자리에 서울시민회관이라는 이름의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 것은 장면 정부 시절인 1961년이다. 시민회관 건립을 처음 추진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었지만 4·19혁명으로 하야하면서 완공을 보지 못했다. 1960년대 시민회관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서울의 명소였다. 각종 공연과 음악회가 열렸고, 10층 높이의 옥탑은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72년 공연 도중 53명이 사망하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완전 소실됐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78년 그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졌다. 3895석 규모의 대극장을 비롯해 522석 규모의 음악전용홀, 270석 규모의 대회의장, 연회장, 전시실 등을 갖춘 다목적 종합문화공간이다. 원래 다목적홀로 계획된 건축물이어서 공연에 최적화된 공간이라고 볼 순 없지만 광화문이라는 최고의 입지 때문에 1988년 예술의전당이 개관하기 전까지 국내 최고의 공연장으로 군림했다. 광화문광장에서 2층 공연장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준공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문화예술의 전당'이라는 휘호가 아직도 남아 있다.
12일 서울시가 제2의 세종문화회관을 서울 서남권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대상지는 아파트 개발 후 기부채납된 영등포구 문래동 옛 방림방적 부지로, 20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과 3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오는 2022년 착공하면 늦어도 2025년에는 완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사실 도심권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을 빼면 서울의 대형 공연장은 동남권, 즉 강남에 집중돼 있다. 지역균형개발은 물론 공연수요 분산이나 문화향유권 확산을 위해서도 잘한 일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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