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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운동선수, 초중고 선수 대비 폭력피해 오히려 심각

"과도한 규율·통제로 인간다운 삶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대학 운동선수, 초중고 선수 대비 폭력피해 오히려 심각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감독님이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한 타투에 대해 지적하며, 부모에 대한 욕을 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대학교 운동선수 A씨)
"생리 주기 물어보면서 '생리할 때 기분이 어떠냐? 생리 뒤로 좀 미룰 수 없냐?'라거나 운동하다가 좀 안 좋아 보이면 '생리 하냐?'라고 한다거나..." (대학교 운동선수 B씨)
"오후 9시 반까지 숙소에 들어와야 해서 일반 학생들과 놀거나 자유롭게 행동하기 힘들죠. 통금 시간을 어기면 50만원 벌금을 내야 해요" (대학교 운동선수 C씨)

대학교 운동선수들의 위계 문화, 자기결정권 제한 등으로 일상적인 폭력과 통제에 심각하게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회원대학을 중심으로 총 102개 대학, 학생선수 70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16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답한 학생선수는 4924명(남 4050명, 여 674명)으로, 인권위는 응답결과 분석자료 외에도 추가 개방형 질문 조사와 대학교 운동선수 28명에 대한 개별 면접 등을 토대로 조사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대학생 선수들이 과도한 규율과 통제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신체·언어폭력 경험 3명중 1명꼴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선수들은 초중고 학생 선수들보다 오히려 인권 상황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체폭력·언어폭력을 경험한 대학생 선수는 3명 중 1명꼴로, 각각 1613명(33%), 1514명(31%)로 집계됐다. 이들은 선배선수, 코치, 감독 등에 의해 주로 경기장이나 숙소에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욕, 비난, 협박'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신체폭력 가해자로는 선배선수(72%, 1154명)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

또 대학생 선수에 대한 상습적인 신체폭력은 지난 2010년 조사에 비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이들 가운데 15.8%(255명)은 '일주일에 1~2회 이상 상습적인 신체폭력을 당한다'고 응답해, 이는 지난 2010년 인권위가 실시한 '대학생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인 11.6%보다 증가한 수치다.

인권위는 "이는 피해자들이 감독, 코치, 선배로 내려오는 수직적인 위계 문화 속에서 주요 생활공간인 경기장과 숙소 등 어디에서도 피해를 회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신체폭력이 발생한 장소는 기숙사(993건, 62%)가 가장 높게 나타나 함께 생활하는 선배선수나 지도자들로부터 편안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초중고 대비 성폭력 피해 2~4배↑.."동성간 성폭력도 빈번"
대학교 운동선수의 성폭력 피해 경험자는 9.6%(473명)로, 초중고 선수 피해실태보다 2~4배 가까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는 주로 '특정 신체부위의 크기나 몸매 등 성적 농담을 하는 행위', '운동 중 불쾌할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 행위' 순으로 나타나 여학생이 언어적인 성희롱의 위험이 더 큰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남자선수의 경우 '누군가 자신의 실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마사지, 주무르기 등을 시키는 행위'와 같은 신체적 성폭력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인권위는 "여자선수들이 경험한 언어적 성희롱의 가해자는 주로 남자선배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자선배가 뒤를 이어 위계적 문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반영했으며, 남자선수들이 경험한 신체적 성희롱은 남자선배, 남자코치, 남자감독 순으로 나타나 동성 간 성희롱도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어 "여자선수들은 언어적 성희롱을 당하는 장소로 훈련장을 꼽았는데, 이는 훈련장이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적 대상화되는 피해를 입어 그 심각성이 더하다"며 "남학생의 경우 신체적 성희롱을 주로 숙소에서 경험했다고 응답해, 이는 동성의 선배와 함께 거주하는 구조에서 위계에 의한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피해 정도가 심각한 강제추행이나 불법촬영에 해당하는 성폭력도 조사됐으며, 성폭행에 해당하는 '강제로 성행위(강간)를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도 2명이 있었다.

자기결정권 침해 및 학내 기회 박탈도..
인권위는 이외에도 대학 운동선수들이 외출·외박 제한, 통금시간, 점호, 복장 제한, 선배와 한 방에 배정 등에 따른 심각한 자기결정권 침해를 겪는다고 판단했다. 또 과도한 운동량으로 학업병행이 곤란하고 동아리 등 대학내 다양한 활동 기회도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응답한 한 대학생 선수는 "합숙소에서 나가는 건 다 허락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할 때도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한다"며 "다 큰 성인이 이게 뭔가 싶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부석한 이규일 경북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는 △운동 중심의 운동부 문화 해체 △자율 중심의 생활로의 전환 △일반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통합형 기숙사 운영 방식으로 전환 등 개선안을 제시했다.

한편 인권위는 대학생 선수들의 인권에 대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날 체육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초청한 정책 간담회를 열고, 개선 방안을 검토한 뒤 대학교 운동선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정책권고로 이어갈 계획이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