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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도피' 한보 정한근, 늦은 후회…"자수하려 했다"

회사 자금 260억여원 빼돌린 혐의 "떳떳하지 않지만 자수하고 싶었다" 검찰 "연내에 추가기소할 계획이다"

'21년 도피' 한보 정한근, 늦은 후회…"자수하려 했다"
[인천공항=뉴시스]최동준 기자 = 도피 생활 중 해외에서 붙잡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지난 6월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2019.06.22.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해외 도피 21년 만에 붙잡힌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54)씨가 수백억 횡령 혐의 재판에서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도피를) 한 것"이라며 "떳떳하지는 않지만 자수해서 들어오고 싶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심리로 열린 자신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재산국외도피) 등 혐의 심문기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이번주 정씨의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심리하기 위한 심문기일이 열렸다.

재판부는 정씨의 도피와 관련해 구체적 상황들을 물었다. 재판부와 정씨의 문답을 종합하면 정씨는 1998년 7월9일 재판을 받기에 앞서 중국으로 도망간 후 홍콩을 오가다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정씨는 친구의 여권을 이용해 미국에서 시민권 신분으로 거주하다 2017년 에콰도르로 갔고, 파나마를 경유해 미국으로 가려다가 지난 6월18일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체포됐다. 보호소에 유치돼있던 정씨는 영사와 면담하고 브라질과 두바이를 거쳐 지난 6월22일 새벽 비행기를 통해 한국에 송환됐다.

재판부는 '만약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안 잡혔으면 계속 해외에서 도피할 계획이었나'고 물었고, 정씨는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범죄가 돼버렸는데 당시에는 상황 자체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고 답했다.

이어 정씨는 "고소 이후 아버지와 형이 구속돼 저 혼자 감당하기 벅찬 상황인데 동아시아가스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 잘못으로 아버지에게 누를 끼칠까봐 막연히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중국에 갔다"면서 "아버지에게 누를 안 끼쳐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움직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재판을 받고 언젠가 나와 제 문제를 해결해주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며 "죄송하다. 이렇게까지 오래 길어지리라고 생각 못 했다"고 말했다. 또 "결국 (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돼서 제가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하다보니 20년이 지났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아버지도 돌아가시면서 '이제 내가 죽으면 너는 가서 자수하라'고 했고, 그래서 사실상 해외생활을 정리하며 최종적으로 거취를 정하려는 와중에 잡혔다"며 "파나마에서 그런 식으로 잡혀서 들어오기 싫었고, 조금 떳떳하지는 않지만 자수해서 정리된 상태로 들어오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정씨 측 변호인은 "정씨는 도망이나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는 없고, 대체로 범죄사실을 인정한다"면서 "그러나 정씨는 본인이 그간 국내법에 의해 죄인으로 단정 지어지고 있는 마당에 법원의 선고까지 감내하고 수감돼있겠다는 입장이라 영장이 발부되고 수감 상태에서 재판이 이어지는 것에 특별한 이의가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심문에 앞서 진행된 공판에서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 국세청 등의 협조를 받아서 최대한 증거를 확보한 뒤 연내에 정씨를 추가로 기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씨의 5차 공판은 다음달 15일 오전 10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정씨는 한보그룹 자회사 동아시아가스 회사자금 2680만달러(당시 환율기준 260억여원)을 스위스의 차명 계좌를 통해 횡령하고 재산을 국외에 은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국세 253억원도 체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와 해외 도피 과정에서 필요했던 서류를 위조한 공문서위조 혐의를 받는다.

한편 검찰은 정씨의 부친 정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1일 에콰도르에서 숨진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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