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3일 법무법인을 통해 "(동생인) 조원태 회장이 공동경영에 무성의한 자세를 보인 결과 한진그룹은 선대 회장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주주들' 속엔 행동주의 펀드인 KCGI(강성부펀드)와 국민연금도 있다. 장차 전례 없는 '남매의 난'이 예견되는 대목이다.
한진그룹은 지주사인 한진칼이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지배하는 구조다. 그런데 한진칼 지분을 보면 조원태가 6.52%로, 조현아(6.49%)는 물론 여동생 조현민(6.47%)과도 엇비슷하다.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5.31%를 갖고 있다. 결정적으로 한진그룹 경영권을 노리는 사모펀드 강성부펀드의 지분율이 15.98%에 이른다.
외견상 한진그룹은 조원태 3세 경영체제를 갖췄다. 지난 5월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 회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이번에 총수 지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현 지분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조원태 체제가 반석 위에 올랐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내년 3월엔 조원태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우리는 3남매 간 조용하고 원만한 타결을 촉구한다. 가족끼리 공개적으로 싸워서 득될 게 없다. 이미 한진은 창업주 조중훈이 사망(2002년)한 뒤 형제들 간에 심각한 분쟁을 겪었다. 그 후손인 3남매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현 한진가(家)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다. 사실 지난봄 국민연금과 강성부펀드가 한진칼·대한항공 주총을 목표물로 삼은 것도 이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은 탓이 크다.
세계 항공시장 여건도 썩 좋지 않은 편이다.
요컨대 지금 한진그룹은 경영권을 놓고 남매들끼리 치고받을 여력이 없다. 국민연금·강성부펀드는 칼을 벼르고 있다. 부디 3남매가 작은 이익을 좇다 큰 손해를 보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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