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각 단체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그중 가장 권위 있는 것이 교수신문이 선정하는 사자성어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다. 공명지조란 불교 경전의 하나인 아미타경에 등장하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뜻한다.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이 상상의 새에 빗댔다. 교수신문은 이 밖에도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어목혼주(魚目混珠)와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 않으려 한다는 뜻의 독행기시(獨行其是)를 후보에 올렸다.
그런가 하면 사자성어를 통해 내년을 전망해보는 단체나 기관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한국국학진흥원이다. 진흥원은 내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자성어로 본립도생(本立道生)을 선정했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이 말은 '기본이 바로 서면 도가 생긴다'는 뜻으로, 어떤 조직이든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원칙이 무너지고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라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이나, 뿌리가 깊어야 가지가 번창한다는 근심지영(根深枝榮)도 같은 뜻이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대체로 사회 비판적이라면 내년의 사자성어는 앞날에 대한 희망을 담는 경우가 많다. 이슬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뜻의 노적성해(露積成海·청주시의회)가 대표적이다. 어둠 속에서도 일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암중모색(暗中摸索·중소기업중앙회)이나 때에 맞춰 내리는 비를 뜻하는 시우지화(時雨之化·충북교육청),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성남시) 등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돌이켜보면 올해 최고의 사자성어는 사자성어가 아니면서 사자성어처럼 쓰인 내로남불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이 말은 흔히 춘풍추상(春風秋霜)의 반대말로 사용됐다. 사실 이 말과 가장 비슷한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는 목불견첩(目不見睫·눈은 눈썹을 보지 못한다)이 있다. 2020년 경자년은 남에겐 봄바람 같고 내겐 가을서릿발 같은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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