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앞바다는 물고기 산란장
광어·멸치·아귀 등 종류도 다양
일 고되니 사람 구하기 어려워
"고기라도 많이 올라와야 힘나요"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늘 다사다난했지만 새해가 되면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품기 마련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들. 2020년은 우리 주변의 이웃을 좀 더 돌아보고 그들의 작은 소망에 귀기울이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산파이낸셜뉴스는 신년기획 "땡큐! 부산, 새해 희망을 쏜다"에서 오늘도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 이웃의 꿈을 응원한다.
대구 조업 금어기를 얼마 앞둔 지난 2019년 12월 20일 자망 그물을 통해 대구를 잡고 있는 기장군 어민들 옆으로 해가 뜨고 있다.사진=정용부 기자
【 부산=정용부 기자】 "왔느냐 대구야. 반갑다 대구야."
알이 꽉 차 어른 허벅지만 한 대구가 그물을 타고 줄줄이 올라오자 그제야 선장 송무용씨가 굳은 표정을 풀며 말했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앞둔 지난해 12월 20일 기자는 부산 기장군 칠암항에서 대구잡이 어선에 올랐다. 어민들은 그날 조업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2시부터 바삐 손을 움직였다. 한 손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고 또 다른 손엔 풍어를 기원하면서 새벽을 깨웠다.
■믹스커피로 시작하는 마라톤 조업
7.93t 어선 영생호가 기장 남동쪽 해상을 향해 출발했다. 선장 송씨는 오늘은 파도가 높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출항과 동시에 선원 3명은 조타실 안쪽 한평 남짓 쪽방에 모여들었다. 베트남 다낭에서 왔다는 선원 뱀씨가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믹스커피를 탔다. 커피를 다 마신 이들은 잠시나마 눈을 붙였고, 알람과 함께 벌떡 일어나 선수로 향했다.
오전 4시, 또 다른 베트남인 선원 응우옌씨가 갈고리가 달린 대나무를 들어 부포를 건져올렸다. 이날 작업해야 하는 6개의 어구 중 첫번째 그물이다.
트롤을 통해 밧줄 수십미터를 끌어올리자 자망 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걸그물이라 불리는 자망은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길게 벽처럼 그물을 세워 그물코에 걸린 물고기를 건져올리는 어구다. 대구는 한랭한 깊은 수심 45~150m에서 주로 포획하며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산란기를 맞아 연안의 얕은 바다를 회유한다. 송씨는 "기장 앞바다 전 해역은 물고기 산란장이나 다름없어요. 광어, 대구, 멸치, 아귀 등 안 올라오는 고기가 없다"고 말했다. 선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구토가 올라왔다. 배를 타기 전 선장이 엄포를 놓아 단단히 준비했지만 대자연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아쉽게도 첫번째 그물에선 소득이 시원찮았다. 이어 방향을 틀어 10여분을 달렸고 한 선원이 쇳덩이 닻을 바다로 밀어넣었다. 굉음과 함께 그물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음날 조업을 위한 투망이다.
조타실에는 방향키를 비롯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어군탐지기, 레이더, SSB무전기 등 각종 장치들이 보였다. 망망대해에서 투망을 어떻게 던지느냐고 묻자 송씨는 GPS를 보면서 다른 어선들과 겹치지 않도록 투망한다고 설명했다.
오전 5시41분, 두번째 그물 위치에 다다랐다. '겨울바다의 진객' 대구가 줄줄이 올라왔다. 3명의 선원은 각자의 역할에 맞게 움직였다. 한명은 그물 위쪽을 잡았고, 다른 한명은 그물 끝을 겹겹이 말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그물에 걸린 고기를 풀어 한쪽에 모아둔다. 각각의 역할 분담이 뚜렷했고, 특별한 말 한마디 없어도 손발이 척척이었다.
그물 2~3m마다 한마리씩 대구가 올라오면서 덩달아 뱀씨의 손이 바빠졌다. 대구와 함께 아귀 따위가 간혹 올라오기도 했는데, 두번째 그물에서만 대구 19박스와 아귀 1박스가 나왔다.
오전 9시, 선원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국을 데우고 선장은 그날 잡아 올린 물고기 몇 마리를 손질했다. 메뉴는 콩나물국에 각종 밑반찬 그리고 광어회가 올라왔다. 식습관이 달라 회를 먹지 않던 베트남 선원들도 바다생활이 익숙해졌는지 회를 잘 먹었다.
오전 11시19분, 네번째 그물에서도 대구가 물밀듯 올라왔다. 기계를 조종하던 선장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그물로 달려왔다. 어느새 갑판에는 대구가 한가득 쌓였다. 송씨의 입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줄어드는 어획량, 인력 수급도 문제
이날 영생호는 대구 약 80박스와 아귀 4박스를 어획했다. 하지만 이런 날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선장 송씨는 "올해는 적자예요. 한때 그물 하나에 20~30박스까지 올라올 때가 있었어요"라며 "요새는 대구가 많이 잡히지도 않고, 수요도 많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어획량 외에도 어민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안정적인 인력수급 문제다. 현재 기장뿐 아니라 각 지역 항구에는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건너온 30~40대 근로자가 흔한 실정이다. 이들은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어업 및 수산분야에서 부족한 어촌의 일손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 또는 일이 힘들어서 고용주로부터 도망을 치는 사례가 흔하다고 하소연했다.
송씨는 "한창 일손이 바쁠 때 갑자기 근로자가 도망쳐버리면 걱정도 되지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어민들 중에 근로자 이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무총리실 산하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어업분야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이탈률은 매년 10%가 넘고 있다. 이는 다른 업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오후 3시39분, 영생호가 13시간 만에 항구로 복귀했다.
부산과 경남지역은 내년 1월 1일부터 31일까지 대구 조업 금어기에 들어간다. 금어기가 며칠 안 남은 시점, 어부들은 내일도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간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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