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를 뜨겁게 달구는 정보기술(IT) 업계 키워드를 하나만 뽑으라면 단연 국제가전전시회(CES)다. CES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국제가전박람회(IFA)와 함께 3대 전자쇼로 불린다. 그중 CES는 가장 오래된 전자쇼다. 무려 50년을 넘었다. 그동안 참가업체는 10배나 커졌으니 그간 어떻게 기업을 유치해 왔는지 궁금해할 만하다. 선진국의 글로벌 행사라고 모두 잘되진 않기 때문이다. 한때 유망주였던 컴덱스(COMDEX)는 CES에 밀려 2003년에 사라졌고, 독일 하노버에서 열렸던 IT전시회 세빗(CEBIT)은 지난해 행사를 포기했다.
CES가 초대형 행사로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 핵심은 변화와 융합이다. 행사 주최 측인 소비자기술협회(CTA)는 1967년 미국 뉴욕에서 첫 행사를 열었다. 그때까지는 시카고 뮤직쇼에서 처음 떨어져 나온 부대행사였다. 당시 200여개 기업이 부스를 꾸리고, 1만7500여명이 관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CES는 단독 행사로 자리잡으며 신기한 가전제품을 선보였다. 볼거리가 별로 없던 그 당시 CES는 각각 여름과 겨울 2회씩 열리는 인기 행사였다.
위기도 많이 겪었다. 첫 번째 위기는 PC산업 붐이 불 때였다. 가전제품 위주로 고객을 모았던 CES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컴덱스에 밀려 위세가 축소됐다. 1995년 여름에는 세계 최대 게임전시회 'E3'가 경쟁자였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주최 측은 행사를 과감히 취소하고 겨울 CES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때 나온 생존전략은 융합이다. 떠오른 PC산업 때문에 존폐위기를 맞았던 CES는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을 기조연설자로 끌어왔다. 이 일을 계기로 CES는 PC산업까지 수용하는 거대 전시회의 초석을 다졌고, 컴덱스는 불과 2년 후인 2003년에 문을 닫았다.
역대 CES에서 소개된 제품을 보면 IT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첫해에 CES에서 나온 신기한 제품은 포켓형 라디오다. 집적회로(IC) 칩을 장착하면서 손가방만 한 크기를 손바닥 크기로 줄였다. 그 뒤로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 레이저디스크가 나왔고 2001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X박스'가, 2008년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었다.
이제 CES는 자동차 전시회에도 위협적인 존재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렸던 국제자동차전시회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매년 1월 열리던 개최시기를 6월로 바꿨다. 매년 참가하며 CES를 선호해왔던 BMW, 벤츠, 현대자동차 등을 포함한 글로벌 업체들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올해 'CES 2020'의 키워드는 한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로보틱스까지 다양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 LG전자, 소니, 화웨이 등 굴지 IT업체들이 차린 부스도 볼만하다. IT서비스업체인 삼성SDS가 처음으로 이번 CES에 전시룸을 마련한 점도 눈에 띈다. 홍원표 삼성 SDS 대표가 현장에 날아가 블록체인,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활용할 고객들을 만난다. 토종 IT솔루션 업체인 한컴도 3년째 부스를 차리고 고객 잡기에 고군분투 중이다.
매년 80여명의 실무진이 현장에 다녀온 후 그해 사업이나 중장기 전략에 반영한다고 한다. 국내 스타트업도 무려 200여곳이 참여했다. 이쯤 되면 CES는 가전전시회가 아니라 융합전시회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CES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ksh@fnnews.com 김성환 정보미디어부 차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