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코노미족
만혼·비혼에 고령화로 1인가구 급증
'1+경제(economy)'일코노미가 소비지형도 흔들어
편의점 1+1,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 코인 노래방…
평상시 소비에선 가성비에 집중하지만
본인 행복 위해 아낌없이 지갑 여는 가심비도 따져
1인가구 지출, 주거비>음식>식료품
교육지출 많은 다인가구보다 가처분소득 비율 높아
혼자서도 못할 것이 없는 일코노미족의 등장으로 유통업계도 이들의 소비지출 행태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혼밥 전용 테이블만 있는 식당이 등장(위쪽 사진)하거나 서울 시내의 한 극장은 좌석에 칸막이를 설치해 나홀로 관객을 위한 상영관을 만들었다.
'나 혼자 산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올해의 프로그램'상을 수상할 정도로 1인가구들의 삶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특히 만혼과 비혼 확산, 고령화 현상에 따라 1인가구가 급증하면서 '1+경제(economy)'를 합친 '일코노미'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들이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떠오르며 한국의 소비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다. '혼밥(혼자 밥먹기)' '혼행(혼자 여행가기)' '혼영(혼자 영화보기)'과 같은 신조어들도 더 이상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파이낸셜뉴스는 회사원 나혼자씨와 오솔로씨의 생활을 통해 '일코노미족'의 생활과 소비패턴을 들여다봤다.
사회초년생 나혼자씨의 오전
독립한 지 얼마 안된 사회초년생인 나혼자씨는 지갑사정이 넉넉지 않다. 난생 처음 혼자 살면서 드는 생활비가 만만치 않아 최대한 절약하면서 사는 것이 목표다. 나혼자씨는 모든 일에 최대한 '가성비'를 따져 움직이는 1년차 1인가구다.
AM7:30 출근을 위해 기상을 한다. 회사와 가까운 동네로 이사 와서 출근시간 1시간 전에 눈을 떠도 괜찮다. 물론 크기는 5평(16.5㎡)밖에 안된다. 공덕역에서 지하철을 탄 나혼자씨는 회사인 광화문까지 4정거장 만에 도착했다.
AM 8:30 회사에 도착한 나혼자씨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은 매일 아침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매일 아침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김밥과 라면 중에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하다 오늘은 김밥을 먹기로 했다. 김밥을 먹으면 사이다를 함께 주는 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밥을 다 먹은 후 편의점 커피머신에서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서 사무실로 향한다.
AM 10:00 오늘따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집중도 안되고, 따분한 것이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한 나혼자씨는 주말에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급하게 주말 '혼행'(혼자 떠나는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주말이라 좌석이 많이 없지만 다행히 잔여좌석이 1석은 있다. 혼자 묵으니 호텔은 부담된다. 1박에 2만원인 게스트하우스에 냉큼 예약하고 나니 '월요병'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AM 11:30 오늘의 점심메뉴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포털사이트에 '광화문 혼밥'으로 검색해본다. 역시나 항상 나오는 메뉴는 똑같다. 분식집, 일본라멘집, 덮밥집, 샐러드가게 등이 나온다. 오늘은 1인석이 있어 눈치보지 않고 혼밥하기 편하고 저렴한 근처 국밥집으로 가기로 한다.
'나혼산' 15년차 오솔로의 저녁
독립한 지 15년 넘은 오솔로씨는 이제 혼자 살기의 달인이다. 혼자이기 때문에 못할 것은 없다. 오솔로씨의 삶의 모토는 '나의 행복'이다. 이제 모든 소비생활 역시 '가심비'에 맞춰져 있다.
PM 6:00 오솔로씨는 퇴근길에 집앞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장을 봤다. 과일을 먹은 지 한 달이 넘은 것 같아 오랜만에 포도와 방울토마토가 들어있는 소포장 과일을 한팩 산다. 계란도 다 떨어져서 4개가 들어있는 소포장 제품을 구매했다. 냉장고에 비상식량이 없으면 허전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떡볶이와 냉동만두도 한 개씩 장바구니에 넣는다. 항상 냉장고에 쟁여두는 필수템인 4개 묶음 수입맥주를 사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PM 7:00 편의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배달음식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오늘은 삼겹살이 먹고 싶었는데 다행히 1인분 배달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1만5000원짜리 삼겹살과 김치찌개 세트 하나를 배달시키며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미리 시켜둔 덕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받아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 한 캔과 삼겹살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PM 9:00 원래 이 시간은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영화관을 가기로 했다. 그동안 개봉을 기다려왔던 '겨울왕국2'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집 근처 다양한 영화관이 있지만 오솔로씨가 찾는 곳은 항상 정해져 있다. '혼영족'을 위해 1인 전용좌석이 잘돼 있는 영화관이다. 물론 일반 영화관의 관람료보다는 3000원가량 더 비싸지만 편한 소파와 널찍한 좌석 배치, 좌석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는 등 워낙 편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가심비'가 좋다고 생각한다.
PM 11:00 영화를 보고 집으로 향한다. 겨울왕국2를 본 후라서 그런지 겨울왕국 OST의 명곡 '렛잇고(Let it go)'가 자꾸 생각난다. 집앞 코인노래방에서 렛잇고나 부르고 가려고 들렀다가 필을 받아서 30분은 더 열창했다.
PM 11:30 이제 슬슬 취침 준비를 한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으로 세탁서비스앱을 켜서 예약을 한다. 세탁을 맡길 옷을 집앞에 두면 알아서 수거해서 세탁 후 다시 배달까지 해줘서 세탁소에 들를 필요가 없어 애용하는 서비스다.
1인가구 보고서
한국의 총인구는 오는 2028년을 기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혼율 상승 등 가구 형태에 변화를 주는 요인들이 더 강하게 작용하면서 1인가구 수는 인구감소 시점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는 순자산(2018년 기준)은 약 1억3000만원, 부채는 2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정인 연구원은 "1인가구는 주거비용·음식·식료품 등의 순으로 지출 비중이 높아 양육 부담으로 인해 교육지출이 가장 많은 다인가구의 소비구조와 대조되며, 상대적으로 가처분소득 비율이 높아 이들의 소비지출 행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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