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암호화폐 산업의 제도화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금세탁 방지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것은 담지 못했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논의해 만든 법이 아니어서 우리의 고민이 담겨 있지도 않습니다. 지금부터 신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연초 파이낸셜뉴스 블록포스트가 2020년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을 전망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법률 전문가가 내놓은 의견이다.
지난 연말 국회 정무위원회가 특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업계에서는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의 제도화를 위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환영 일색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했는데 찜찜한 이유를 찾은 듯싶다.
특금법. 금융위원회 입장에서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세탁을 막아보겠다며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의무화, 실명확인계좌를 발급하는 조건 강화 같은 조항을 넣어 암호화폐 거래 자체에 자물쇠를 채우겠다는 의지만 보였다. 특금법이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면 암호화폐를 활용한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 사업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자물쇠는 채우는데, 열쇠를 찾으려면 열댓개 법률을 모아 알아서 숨은그림찾기 하라는 말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특금법으로는 암호화폐 산업이 기를 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업계는 왜 환영 일색이냐고 물었더니 업계 실무자들이 내놓은 풀죽은 답이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러면 안될 듯싶다. 급하니 일단 자물쇠 법이라도 만들어놓고 나중에 하나씩 고쳐가자는 계산으로는 열쇠를 못 만들어갈 듯싶다.
20대 국회가 파장 분위기다. 20대 국회 내내 풀지 못한 숙제를 밀린 방학숙제 하듯 떨어내고는 모두 4월 총선 앞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특금법 개정은 밀린 방학숙제 축에도 못 들어 아직 제자리다. 업계에서는 아쉬워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지금부터 새로 법률을 논의했으면 한다. 우선 산업의 문을 열고, 어느 부분에 자물쇠를 채워야 하는지 정교하게 의논했으면 한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요구하는 정책도 있지만, 한국에도 한국에 맞는 산업 전략과 정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에 페이스북 리브라와 스타벅스의 백트가 있고 중국에 블록체인 굴기가 있는데, 한국에도 한국의 블록체인 산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국회가 새로 시작해줬으면 한다.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아 열쇠와 자물쇠가 함께 있는 법안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줬으면 한다.
만들어진 제도에 불만스러워 하는 모습이 아니라, 제도를 만드는 주역으로 참여해줬으면 한다. 정부는 업계를 파트너로 인정해 함께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산업이 정부의 적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산업계를 밀쳐내지 않았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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