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사유화' 논란 확산
상대적 박탈감 느낀 유권자들
정부의 국민 무시 태도에 부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가 지난해 신주쿠구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놀이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일본 총리 관저
【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명 '벚꽃스캔들', 일본 정부의 국가적 행사 중 하나인 '벚꽃을 보는 모임'을 둘러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권력의 사유화' 논란이 일본 언론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이다. 처음 사안이 터질 무렵만 해도 "금새 사그라들 것이다. 이것보다 더 심한 사건이 2017년 모리토모 학원 비리 사건이었는데, 그것도 결국 그대로 지나갔다"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상당수가 정권을 흔들만한 폭발적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본 야당의 지리멸렬함 속에, 일본 국민들의 침묵 속에, '벚꽃이 지는 속도 만큼' 이 사안도 자연히 가라앉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랬던 벚꽃 스캔들이 해를 넘기도록 건재하더니 후속 비위 스캔들인 카지노 복합리노트(IR)뇌물 수수 사건에 각료들의 잇단 비위·낙마와 결합되면서 아베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3대 의혹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40%대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했던 아베 총리의 국정 지지율은 지난해 말 이미 30%대로 내려간 상태다.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에 따른 각종 의혹과 문제에도, 침묵해 오던 대다수 일본인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이토록 오랫동안 화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자민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총리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벚꽃 스캔들이 아베 정권의 뇌관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상대적 박탈감
크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국민을 무시하며 어물쩡 넘어가려는 태도', 이 두 가지가 일본 사회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벚꽃을 보는 모임'은 매년 4월 신주쿠교엔(옛 일본 왕실 소유 정원)에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초청해 총리 부부와 함께 벚꽃을 보는 행사로 지난 1952년 시작됐다. 일생에 한 번만이라도 초청되면 영광으로 여길 정도로 일반 서민들에겐 선망의 자리다. 그런 행사에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을 대거 초청한 것도 모자라, 이 행사 전야제에 일본 최고급 특급호텔(뉴오타니 호텔)에서 단돈 5000엔에 숙식을 해결하도록 해준데다 조직폭력단과 경제사범까지 초청한 일이 알려지면서 '세금으로 자신의 선거운동을 한 것 아니냐'는 이른바 '권력의 사유화(사물화·私物化)'비판이 일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놀이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일본 총리관저
규범주의적인 시각을 좀 더 파고들어가보면, 개인의 상대적 박탈감과 연결된다는 지적이 있다. 4월만 되면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일찌감치 도쿄 우에노공원 등 벚꽃 명소에선 자리 싸움을 벌일 정도로, 벚꽃놀이에 유난맞은 일본에서 총리가 초청하는, 그것도 일본이 자랑하는 신주쿠교엔이라는 곳에서 벚꽃을 즐긴다는 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행사에 아베 총리 지역구민들이 '특혜성' 초청을 받았다는 건 상당수 일본인들로선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한 중견 일본 언론인은 "보통사람들은 갈 수 없는 행사에, 아베 총리 지역구민이라고 해서 초청받는다는 건 일종의 '상급 국민'과 '하급 국민'으로 칭해지는 이른바 최근 일본 사회의 양극화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의 각종 비위에 이골이 난 유권자들도 상대적 박탈감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놀이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일본 총리 관저
■국민 무시·설명 부재
당초 이 사건이 불거졌던 지난해 11월 말, 아베 총리와 정권의 '입'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사실이 아니다." "초청자 명단이 없다" "명단을 야당에 제공할 의무가 없다" "파기했다"는 식으로 말바꾸기와 은폐를 시도했다. 잘못된 초동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7년 사학법인인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으로 매입한 사건이 불거졌을 때처럼 이번에도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결국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는 일종의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과 결합되면서 3개월이 지나도록 사안이 사드라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지난 20일 한 해 국정 구상을 밝히는 시정방침 연설에서 이 벚꽃파문과 카지노 복합리조트 사건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이 점을 지적하며, '설명 방기는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다. 당초 안정적 권력 승계 내지는 4연임의 발판 마련을 위해 호기롭게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아베 총리로선 벚꽃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정권 후반기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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