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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융사 과징금으로 손배...한국형 '페어펀드' 도입 검토

라임·DLF 사태 등 재발 방지 
금융위, 미국제도 벤치마킹 검토
배상압력 높여 불공정거래·불완전판매 억제
과징·추징금 등 재원확보가 핵심

[단독] 금융사 과징금으로 손배...한국형 '페어펀드' 도입 검토
[파이낸셜뉴스 최경식 기자] 최근 라임 및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을 계기로 금융당국에선 불공정거래 및 불완전판매 행위자에게 과징금·벌금 등을 부과한 후 이를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반환해주는 구제목적 펀드인 '페어펀드(Fair Fund)'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미국 페어펀드제의 국내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도입한 것으로, 일반투자자의 피해를 국가기관이 위법행위자로부터 징수한 제재금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므로 사적 피해에 대한 공적 차원의 보상을 하는 제도다. 소액·다수 불공정거래·불완전판매 피해자의 경우 정보력 열세와 비용 부담 등으로 소송제기가 어렵고, 집단소송도 내재적 한계로 인해 이용하기 곤란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됐다. 페어펀드 도입 전에는 민사제재금이 국고로 환수됨으로써 책임재산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오히려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에 방해요소로 작용했는데, 민사제재금을 손해배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페어펀드 도입으로 책임재산이 확보돼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가능해졌고 과징금 부과에 대한 정당성도 마련됐다는 평가다.

통상적으로 국내의 경우 불공정거래·불완전판매 행위로 소액·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되지만, 소제기의 어려움으로 배상을 받는 것은 물론 배상 압력을 통한 불공정거래·불완전판매 억제를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라임 및 DLF 사태 등이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이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한국형 페어펀드'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형 페어펀드의 도입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운영재원의 확보로 여겨진다. 이는 불공정거래·불완전판매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부과된 금전을 대상으로 하는데,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벌금, 불완전판매에 대한 과징금, 시장교란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당이득에 대한 몰수 추징금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 중 금융위가 부과하게 될 과징금을 재원으로 하는 방안에 대해선 큰 어려움이 없지만, 벌금의 경우엔 형사벌로 국고귀속 대상이므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 2014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불공정행위자의 불법이익 및 부당이득에 대한 환수가 강화됐지만, 미국과 같은 방식의 펀드기금을 조성하기 위해선 형사 벌금, 과징금, 몰수·추징 등의 법적 성격 재정립 및 금융감독기구의 부당이득반환 명령 등 관련 제도에 대한 폭넓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금융위는 불공정거래 과징금을 내부자거래, 시세조종 행위로 확대하고 싶어하지만 법무부(검찰)의 반대로 못하고 있고, 금융권에선 불완전판매 과징금 부과 수준인 50%도 해외 대비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불완전판매 과징금 부과 수준이 보통 1.5~3배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어펀드의 실제 도입이 이뤄지면 운영주체는 금융당국 또는 법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페어펀드는 원칙적으로 적발 및 기소 등 공적 활동의 산물이고, 국고 귀속이 예정된 기금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관련 기관에서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펀드의 설립·운영 및 분배는 금융당국이 주도하되 법원의 승인을 얻도록 해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페어펀드를 분배받을 수 있는 대상은 법원판결을 받은 자, 집단분쟁조정 참여자 및 금융당국이 당사자 또는 대리인으로 수행한 소송에 참여한 투자자 등이다. 아울러 분배 과정은 펀드 설립후 분배계획을 제출받아 이를 공시해 의견을 수렴한 후 법원의 승인과 피해자의 참가신청을 받아 최종 분배가 이뤄지는 방안이 검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징수된 과징금과 벌금을 피해자에게 반환함으로써 피해 회복이라는 실질적 정의 실현 및 투자자보호 책임을 완수하고,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피해자 손해배상에 적극 개입해 금융시장 신뢰도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재로선 라임사태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라임펀드를 은행의 'OEM 펀드'로 의심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OEM 펀드는 판매사가 설계부터 제조, 운용 단계까지 깊숙이 관여한 펀드를 말한다.

만약 이번 금감원 조사로 주요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 라임펀드의 설계·제조·운영에 관여해 대규모 투자손실로 이어진 것이 확인된다면, 사실상 운용을 지시한 은행은 라임투자자에 대한 형사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업계 일각에선 전액 손해배상 가능성과 라임운용 대표의 전 직장인 모 은행이 깊숙이 연루된 것은 OEM 펀드를 충분히 의심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말했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