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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행동하는 美 연준, 여전히 굼뜬 한은

파월 의장 0.5%P 전격 인하
이주열 총재 "여건 변화 감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폭도 0.5%포인트로 컸다. 전통적인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원칙을 깼다. 그만큼 연준이 코로나19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1.0~1.25% 수준으로 내려왔다. 금리 상단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1.25%)와 같다. 앞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긴급 전화회의를 통해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 직후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이 총대를 멨다.

생각할수록 아쉽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 동결(1.25%)을 결정했다. 만약 이때 금통위가 금리를 내렸다면 국제공조를 선도할 수 있었다. 더구나 한국은 코로나 요주의 국가로 꼽힐 만큼 사태가 급박하다. 그에 비하면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런데도 연준은 시장이 깜짝 놀랄 '빅 컷' 결정을 내렸다. 상대적으로 한은의 판단은 지나치게 안이하게 보인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다고 경기가 단박에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정부는 11조7000억원 규모의 슈퍼 추가경정예산안을 짰다. 위기 때 가장 효율적인 대응책은 정책 조합이다. 재정과 통화(금리) 정책이 같이갈 때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늑장대응보다는 차라리 선제적 과잉대응이 낫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편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 정책을 통해 국제사회가 얻은 교훈이다.

한은은 4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향후 통화정책을 운영할 때 (연준의 금리인하 등) 정책 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감안하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미지근하다. 한은은 이미 실기했다.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한은이 국제 금리인하 대열에 동참하길 바란다. 다음 금통위는 4월 9일에 열린다. 그새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 경제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한국은행법에서 정한 대로 임시 금통위를 소집하면 신속하게 금리를 내릴 수 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리스크를 보고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행동하는 중앙은행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한은은 여전히 신중함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모습이다. 비상한 시국에 신중함은 종종 우유부단함과 동의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