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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진의 글로벌 워치] 코로나19 이후 신세계질서에 대비해야

[송경진의 글로벌 워치] 코로나19 이후 신세계질서에 대비해야
체제적 위기는 세계질서에 변화를 수반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및 세계보건기구(WHO),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탄생했다. 위기에 대응한 리더십과 국제공조의 결과물이다.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경제위기에 직면한 세계는 '위기 때는 리더십과 국제공조'라는 공식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26일) G20 화상정상회의에서 도출된 코로나19 국제공조 공동선언문에 대한 시장의 기대도 크지 않다. 가장 중요한 미국과 중국이 위기극복을 위한 리더십은커녕 음모론을 제기하며 상호비방에 바쁘기 때문이다. 일시적 화해 제스처는 '일시적'일 뿐이고 기저에는 위기극복에 역행하는 미·중 패권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는 분열된 투 트랙의 세계질서를 마주보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국면에서 동맹국들에 어떤 도움이나 리더십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진단키트 수출지원을 요청한 당일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생존과 미국인을 위해 모든 것을 미국에서 해야 한다는 자국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창했다. 전후 70년간 글로벌 공공재와 리더십을 제공하며 세계질서를 주도했던 초강대국 정상의 발언이 맞나 싶었다. 막대한 자원과 재원을 가진 미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스스로 영향력을 줄이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지 않더라도 유지될 기조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코로나19 위기를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구축에 중요한 기회로 본다. 유럽국들에 의료진, 의료장비 등 필요한 공공재를 지원하고 있다. 작년 3월 유럽연합(EU)은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로 선언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는 중국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19 협력을 '보건 실크로드'라고 부르며 일대일로를 통한 자국의 영향력 확대와 패권국을 향한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최근 득세한 자국주의, 고립주의와 일방주의가 코로나19 이후 세계화의 퇴조와 미·중의 체제경쟁을 심화시키고, 투 트랙의 분열된 신냉전의 세계질서를 가속화할 판은 이미 깔렸다. 한국이 코로나19 이후 취할 포지셔닝에 대한 국가 전략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냉전시대를 경험한 원로 정책결정자들의 지혜도 반드시 모아야 한다.

각국의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시각도 변했다. 바이오헬스케어, 인공지능(AI)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의 생산라인과 공급망의 리쇼어링, 즉 '국내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미국은 마스크, 의료장비 등 코로나19 대응물품 공급망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정보은폐 의혹으로 인민의 신뢰를 잃은 중국 공산당도 민생안정을 위해 소비와 내수 부양책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미·중이 자국 생산과 내수를 강화하면 세계무역이 감소한다. 이 새로운 지형에서 대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한국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에서 세계화 퇴조의 최대 피해국이 될 것이다. 내수시장이 크지 않은 우리와 같은 중소규모 경제는 국내총생산과 일인당 국민소득이 줄어드는 경제·사회·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혁신에 기반한 산업구조조정을 병행해 과도한 수출 의존성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내수를 신속하게 확대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당장은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동시에 금세 다가올 투 트랙의 분열된 신세계질서의 특성을 이해하고 빠르게 대비하는 것이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송경진 FN 글로벌이슈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