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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마이너스 임박…내년 '오일쇼크' 우려도

[파이낸셜뉴스]

국제유가 마이너스 임박…내년 '오일쇼크' 우려도
WTI 유가 추이(배럴당 달러) /사진=매크로트렌드, CNN비즈니스

석유값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유가 기준물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내륙 깊숙한 곳에서 생산돼 말 그대로 더 이상 석유를 보관할 곳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게 이유다. 반면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남는 석유를 유조선에 보관할 수 있어 배럴당 20달러 유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극적으로 다시 감산에 합의한다 해도 이같은 상황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유가 폭락으로 석유업체들이 유정을 잇따라 닫을 경우 세계 경제는 석유공급 부족에 시달려 '오일쇼크' 상황을 맞을 것으로 우려됐다. 닫았던 유정 재가동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석유공급 확대가 한동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이같은 판단을 근거로 내년 유가 급등을 예상하고 있다.

1일(이하 현지시간) CNN비즈니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이 속속 마이너스 유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홈리스 석유' 하루 600만배럴
코로나19로 항공유 수요부터 일반 휘발유 수요, 공장들의 석유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반면 이날부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 산유국 간에 맺었던 3년에 걸친 감산합의가 종료되면서 석유공급은 급격히 늘어나게 됐다. 특히 사우디와 러시아가 석유전쟁에 나서면서 시장에는 석유가 흘러넘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가가 급락해도 미 셰일석유 업체들 역시 버틸때까지 버틸 것이고, 설령 공급 감소에 들어간다 해도 유정 폐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까지 쏟아지는 석유를 보관하지 못하면 대란이 불가피하다.

해상에 비해 육상 석유저장시설은 여유가 훨씬 적어 조만간 생산되는 석유를 보관할 곳이 사라질 전망이다.

뉴버거 버먼의 선임 에너지 애널리스트 제프 윌은 "시장에서는 더이상 수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생산된 석유가 갈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석유 저장시설, 정유사, 해상 석유터미널, 유조선, 송유관 등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조만간 한계에 이르게 된다.

JBC 에너지는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석유수요 감소세가 너무 가파르다"면서 "아주 가까운 장래에 대다수 석유생산 업체들의 고민은 어떻게 생산비를 맞추느냐가 아니라 생산된 석유를 출하할 곳이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유가 있는 저장시설은 유조선이다.

JBC에 따르면 가장 큰 유조선인 VLCC급 유조선들의 약 20%는 해상 석유저장시설이 되겠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석유를 모두 저장할 수가 없다.

JBC는 말 그대로 갈 곳이 없는 '집 없는 석유'가 4월에는 하루 600만배럴, 5월에는 하루 700만배럴씩 쏟아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리스크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도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전세계 석유재고가 수주일 안에 최대에 도달할 것이라면서 '전통적인 육상 석유저장 시설'을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OPCE과 러시아 등이 조만간 감산에 다시 합의한다 해도 그동안 시장에 쏟아져 나온 석유재고가 너무 많아 올 중반이면 석유저장능력이 한계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이미 각 항구와 정유사들은 유조선들을 돌려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성 높아지는 마이너스 유가
마이너스 유가는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주 블룸버그에 최근 미 와이오밍주에서 생산된 석유가 배럴당 -19센트에 거래됐다.

가격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는 것은 유정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 유가가 계속해서 생산비를 밑돌아 차라리 유정을 폐쇄했다가 뒷날 재가동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때까지 석유업체들은 일단 석유를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석유 구매자들에게 돈을 주고라도 게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석유를 처리해야 한다.

생산 중단을 결정해도 유정 폐쇄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생산되는 석유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특히 브렌트유처럼 유조선을 이용할 수 있는 해상 유전보다는 WTI처럼 내륙 깊숙히 자리잡은 석유에 치명적이다.

골드만삭스 상품 부문 책임자 제프리 커리는 WTI, 특히 WTI 미들랜드와 캐나다의 서부캐나다실렉트(WCS)가 '마이너스'로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석유저장 시설 포화로 미 석유생산 가운데 최소 하루 90만배럴이 유정폐쇄로 생산중단될 것이라면서 오래되고 생산성이 낮은 유정부터 폐쇄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결국에는 미 석유 공급 능력이 최대 하루 500만배럴 사라지게 될 것으로 골드만삭스는 전망했다.

오일쇼크의 씨앗 되나
불가피한 유정폐쇄로 석유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이는 공급이 달리는 오일쇼크의 씨앗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코로나19 확산이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고 경제가 다시 재가동되기 시작하면 석유수요가 급격히 늘겠지만 공급확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커리는 수요초과가 현실이 되면 유가가 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가 회복하는 내년이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55달러를 크게 웃돌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