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국부펀드 '매수 목록' 들고 바이오·IT 등 저평가 기업 물색
中기업들, 유럽 IT기업 인수 추진
【 베이징·서울=정지우 특파원, 송경재 기자】코로나19 충격으로 세계 주요 기업들의 자산 가치가 폭락하자, 글로벌 기업 사냥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의 먹잇감은 미국 셰일기업, 유럽 석유·정유회사, 정보통신업체(IT), 축구클럽, 물류, 원격의료, 금융 등 국가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기회를 틈타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곳은 모두 투자 대상이다. 2008년~2009년 금융위기 때도 기업 사냥꾼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미국·유럽 잠식하는 중동 오일머니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동 오일머니가 유가폭락으로 자국내 자금수요 급증하면서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FT는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런던의 한 은행 고위관계자를 인용, "중동 국부펀드들이 이미 '매수 목록'까지 준비했다면서 저평가된 기업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냥감은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의 바이오, 의료, 제약, 정보기술(IT) 업종에 집중된다. 일부는 태스크포스(TF)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회장인 자산 3200억달러의 사우디 공공투자펀드(PIF)는 '전략적 투자와 (차익을 노린) 기회주의적 투자의 혼합'을 투자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PIF는 이미 지난 수주일 동안 크루즈 선사 카니발, 석유 메이저 로열더치셸, 토탈, 렙솔, 에퀴노르, 에니 등의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였다. 지난달 유가 폭락 속에서도 유럽 석유메이저 주가가 폭등한 배경이 PIF라는 지적들이 많다.
PIF는 이번 주에도 사냥을 멈추지 않아 영국 프로축구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억파운드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사우디 고위 관계자는 "물류, IT, 원격의료를 비롯한 전망이 밝은 업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UAE 아부다비의 국부펀드 무바달라도 투자 대상을 활발히 탐색하고 있다. 주로 미국과 유럽, 중국의 의료기술업체들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소식통은 운용자산 2300억달러의 무바달라가 '최첨단 제약, 의료기술' 업체 투자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 PIF와 무바달라 모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주요 투자자로 각각 150억달러, 450억달러를 투자했다.
카타르는 이미 지난해부터 투자 확대에 나선 상태다. 3200억달러를 굴리는 카타르 투자청(QIA)은 런던 샤드빌딩, 해롯 백확점 등을 소유하고 있고 지난해 북미와 아시아 투자를 확대한데 이어 신흥국 전담팀을 꾸려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운용자산 규모 7000억~8000달러로 중동 지역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 투자청(ADIA)는 좀 더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UAE가 연방차원의 자금을 필요로 할 때 곧바로 자금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에 좀 더 신중한 편이다. 그러나 ADIA조차 이번 코로나19 폭락장에서는 헐값이 된 기업사냥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들은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 당시에도 대대적인 기업사냥에 나선 바 있다. 카타르와 아부다비는 당시 영국계 다국적 은행 바클레이스,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S), 독일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 다임러 등 주가가 폭락한 기업들의 지분에 대규모로 투자해 짭잘한 수익을 거뒀다.
■IT기업 노리는 차이나머니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코로나19로 위기를 겪는 유럽의 IT 기업들이 차이나 머니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의 통신망 장비업체 노키아의 1분기 주가는 전년 대비 9.6%가 떨어졌고 경쟁 업체인 에릭슨 역시 2% 하락했다. 독일 반도체업체인 인피네온의 주가는 20%, 스위스 반도체업체인 ST마이크로는 7.5%의 낙폭을 기록했다.
스위스 미라보 증권의 기술·미디어·통신 연구 책임자인 닐 캠플링은 "중국은 늘 '사는 게 만드는 것보다 빠르다'는 전략을 사용했다"면서 "최근의 혼란과 낮은 시장가치는 그들이 기회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은 이미 유럽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6년 중국의 IT 기업인 텐센트는 핀란드의 모바일 게임업체 슈퍼셀의 주주를 대량 구매하며 대주주가 됐다. 중국 가전업체 미데아는 독일 로봇업체 쿠카를, 중국 알리바바의 금융기술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은 영국계 핀테크 기업 월드퍼스트를 인수했다.
닐 캠플링은 "유럽은 경제성장과 혁신 측면에서 중국과 미국에 뒤처져 있다"며 현재 위기에 더욱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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