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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범죄 스톱!" 시민들이 성형외과 원장 재판에 온 이유

김선웅 원장 '정보통신망법 위반' 공판
인터뷰 허락 시민 9명 인터뷰
바꿀 수 있을까 '무력감' 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왔다"
'권대희 사건' 이나금씨 "큰 힘 얻어"

[파이낸셜뉴스] 25일 오후 4시께 서울고등법원 앞에선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십여 곳의 언론사 기자들과 수십여 명의 시민들이 서로 다른 사람을 둘러싸고 모여든 것이다.

기자들이 둘러싼 건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이고, 시민들이 몰려든 쪽은 성형외과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한 김선웅 원장이었다.

같은 시간대 진행된 두 재판은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공판정엔 많은 언론사가 찾아 뜨거운 관심을 보냈고, 김 원장 공판정엔 대다수가 일어서서 재판을 봐야 했을 만큼 붐볐지만 본 기자 외 단 한 곳의 언론사도 찾지 않았다.

그간 성형수술 사망 실태를 추적해온 기자는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와 함께 일면식도 없는 한 의사의 ‘명예훼손’ 재판을 보기 위해 평일 오후 시간을 내 법원을 찾은 수십 명의 시민들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재판 뒤 보도를 허락한 시민들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의료범죄 스톱!" 시민들이 성형외과 원장 재판에 온 이유
김선웅 원장 공판이 열린 24일 오후 김 원장과 지지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씨 지지자들은 자발적으로 플랜카드와 피켓, 인쇄물들을 준비해와 현장에서 나누기도 했다. 유튜브 '닥터 벤데타' 제공.

■무력감 딛고 바로잡기 위해 나왔다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김 원장 재판에 모여든 시민들에겐 좀처럼 공통점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 중 대다수가 김 원장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난생처음 법원을 찾았다. 또 절반 이상이 성형수술을 비롯해 각종 수술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이들은 왜 김 원장의 재판을 찾아 응원을 보낸 것일까.

이날 찾은 이들 중 가장 어린 참관객은 1998년생 정성은씨(22·여)다. 김 원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닥터 벤데타’를 보고서 지난 공판부터 참여했다는 정씨는 일종의 ‘무력감’을 호소했다.

정씨는 “우리나라 수술실에서 이런(유령수술 등)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그런 의사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우리 주변에 이웃으로 있다는 모습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씨는 “가만히 놔두면 미래세대가 다른 곳에서도 피해를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최재훈씨(23) 역시 유튜브를 보고 법원을 찾았다고 했다. ‘닥터 벤데타’를 응원하는 전단지를 인쇄해온 최씨는 “성형만이 아니라 누구나 나이가 들어 수술하러 갔다가 이런 수술을 당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성형수술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의료계 전체의 문제로 지적해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가까운 지인도 필러를 맞았다가 잘못돼 인상이 안 좋게 됐다”며 “언젠가 누구든 자기나 가족이 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감하고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유정숙씨(48·여)는 ‘권대희 사건’ 영상을 보고 법원에 오게 됐다고 말한다. 김 원장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닥터 벤데타’에 올린 권씨 수술 영상을 본 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겠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유씨는 “처음 닥터 벤데타 영상을 보고 알게 됐는데 영상이 너무 무서워서 보지 못하다가 그래도 꼭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보게 됐다”며 “대희군 수술 영상을 봤을 때 너무너무 가슴이 북받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하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눈물을 보인 유씨는 “젊은 사람들이 (일부 병원 수술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갔다가 의료진이 내 몸에 범죄행위를 하는데도 처벌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이걸 막아야 하는 사람들까지 동조해 (처벌을) 막고 있는 게 너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공판에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료범죄 스톱!" 시민들이 성형외과 원장 재판에 온 이유
환자 동의 없이 진행되는 일부 의료진의 일탈행위가 이어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사면허 정지 등의 규제가 어려워진 탓에 이를 개선하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법안이 발의돼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출처=fnDB

■마취되자 몰려든 수련생 ‘사전동의’ 없었다


의료기관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모씨(41·여)는 한 종합병원에서 가슴 종양수술 중 일어난 일을 증언했다. 이씨는 “20대 후반에 가슴에 작은 종양 제거하려고 병원에 갔는데 대뜸 의사가 저를 보고 웃으며 ‘싸게 해 줄게요’ 그랬다”며 “2cm도 안 되는 종양을 제거하는데 전신마취를 했고 눈 감는 순간에 우루루 수련생 열댓명이 들어오는 걸 봤지만 마취돼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다른 의사들이 참관하러 들어온다는 얘기는 사전에 전혀 듣지 못했다”며 “나중에 수술된 부위가 벌어져서 다시 병원에 갔는데 다른 의사가 ‘아니 이걸 제거하는데 왜 전신마취했죠’ 하고 묻더라”고 떠올렸다.

이 사건 이후 환자의 동의 없이 수치심이나 모욕감, 비윤리적 행위가 빚어지는 많은 상황을 뉴스 등을 통해 접해왔다는 이씨는 “저는 아직도 그 일로 수치심이 남아있는데, 더 큰 사고로 이어진 분들이 어떻게 살고 계실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며 “좋은 결과 나올 때까지 힘을 보태주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이 잘못돼 병원과 투쟁에 돌입한 이들도 있었다. 김미경씨(46·여)는 “거짓된 의료광고에 속아서 치과에서 피해를 입고 나서 그 의료기관에서 다수 피해자가 양산된 걸 알고 그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나가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김선웅 원장님을 알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선의의 의료행위가 아니라 의도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며 “성형외과 피해자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나서셔서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실 때, 지금 해결해야지 이때를 놓치면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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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 출신으로 한국 성형외과의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해온 김선웅 원장(왼쪽)이 24일 재판에 참석한 지지자들에게 문제점을 역설하고 있다. 김 원장 곁에 '권대희 사건' 유족 이나금씨도 함께 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잘못된 수술 후기 올렸더니 ‘명예훼손’

강남 한 성형외과에서 피해를 입고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의료사고 피해자 이모씨(41·여)도 함께 자리했다. 이씨는 “돌아가신 권대희씨랑 같은 수술을 받고서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받고 있다”며 “내 일이 될 줄 몰랐는데 닥치고서야 내 일이 될 수 있구나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문제 병원의 광고를 반박하고 피해를 고백하는 게시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 소송까지 당해 끝내 승소했다는 이씨는 “성형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저는 적극적으로 (광고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병원에 부정적인 후기를 올리면 다 삭제당하고 소송 걸리는데 (굴하지 말고) 피해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소리를 내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어 “어느 병원, 어느 의사한테 (수술을) 받았는데, ‘좋았다’ ‘나빴다’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며 “광고도 풀어주고 광고로 대형병원을 유지하면서 다른(유령의사) 손 빌려서 수술을 하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공판에 이어 두 번째 재판에 참석했다는 양모씨(45)는 스스로 김 원장의 팬이라고 자처한다. 양씨는 “유령수술, 대리수술, 동시수술 이런 게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것도 충격적인데, 더 충격은 의사들의 명예를 더럽힌 이런 사람을 의사단체에서 오히려 옹호하고 넘어가려 하는 모습”이라고 개탄했다.

양씨는 “같은 의사지만 김선웅 원장이 환자 인권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팬이 됐다”면서 “권대희씨 어머니의 수술실CCTV 문제도 주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응원했다.

유령수술 등 범죄적 관행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데 모두가 큰 공감을 이뤘다. 김혜원씨(25·여)는 “실제 의사선생님이 직접 싸우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힘을 실어드려야겠다 해서 왔다”며 “누구든 자기나 지인들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바로잡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성형수술 받는 사람들이) 떠도는 소문을 듣고 ‘어떤 병원은 가지마라’ ‘대형병원은 피해라’하는 정보를 얻어 결정하게 된다”며 “마취를 하고, 의식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는 정연주씨(43·여)는 “너무 안타깝고 슬퍼서 두 번째 오게 됐다”며 “미국이나 영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이 우리보다 의료시스템이 안 좋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알고 나서 뭐가 나은가 하는 생각에 좌절했고 슬프더라”고 고백했다.

정씨는 “뭐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은 잘 안 든다”면서도 “권대희씨 이야기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뭐라도 해야 되지 않나 싶어 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의료범죄 스톱!" 시민들이 성형외과 원장 재판에 온 이유
고 권대희씨와 어머니 이나금씨가 지난 2016년 서울 코엑스에서 나들이하다 찍은 사진. 권씨는 약 세 달 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졌다. 중앙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된 권씨는 49일만에 저혈량성 쇼크로 숨졌다. 권씨를 수술한 집도의와 신입의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마저 부인하고 있다. 고 권씨 유족 제공.

■하늘에서 엄마 도와주는 것 같아

이날 자리를 함께한 ‘권대희 사건’ 유족 이나금씨는 일면식 없는 이들이 보내준 지지와 공감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2016년 경희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권씨(당시 25세)가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사망한 뒤 4년 여 간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이씨로선 처음 받아보는 응원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동안 싸움을 이어오며 너무 억울하고 힘든 일이 많았는데 이렇게 와주신 분들을 보니 꼭 이길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며 “하늘에 있는 대희가 ‘엄마 너무 힘들지 말라’고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이어 “이 문제가 대희 한 명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강남 병원들에서 일어나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아무것도 모르고 성형하다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아이들을 구하는 일이란 신념으로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공판정에 온 이들에게 ‘권대희 사건’ 탄원서 서명을 받은 이씨는 오는 5월까지 5000명의 서명을 받아 권대희 형사사건과 재정신청을 맡은 서울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를 위해 이씨는 서울 곳곳을 돌며 1인시위에도 나설 계획이다.

한편 3년이 넘는 수사 끝에 기소된 권씨 사건은 내달 다음 공판이 예정돼 있다. 핵심으로 지목된 의료법 위반 행위는 빠져 업무상 과실치사 등을 다투게 된다.
집도의 장모씨와 그를 대신해 수술을 이어받은 의사 신모씨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본지 4월 11일. ‘[단독] 그날 법정엔 한 명의 기자도 없었지만’ 참조>

환자가 마취된 뒤 사전에 합의된 의사가 수술 중 다른 수술을 하러 나가고 경험 적은 의사가 대신 수술을 진행한 사실, 같은 시각 3개의 수술실을 오가며 수술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부인한 것이다.

이씨는 5월 21일 진행되는 공판에서 고발인 신분으로 30여분 동안 변론할 예정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