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권대희 사건... 사기·상해 등 불기소
조영남 대작사건은 '무죄' 결정 불복 '상고'
檢 이중잣대, "환자 그림 구매자보다 못하나"
[파이낸셜뉴스] #.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20대 대학생이 수술 중 중태에 빠져 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인은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수술 중 발생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원인이 됐다. 수술 중 흘린 피는 3500ml, 45kg 성인여성 몸 속 전체 혈액에 해당한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피해자가 수술 받던 동안 수술실 3곳에서 동시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집도의와 마취과 의사, 사전 합의되지 않았던 20대 젊은 의사가 수술실들을 번갈아 오가며 조치했다.
특히 고인을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조치한 시간만 무려 35분에 달했다.
그럼에도 담당 수사검사는 간호조무사의 단독 지혈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지 않았다. 옆 수술실에 의사가 있어 감독이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집도의가 뼈만 절개한 뒤 나간 뒤 환자와 합의되지 않은 의사가 들어와 조치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사기죄부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나 살인죄까지를 따져볼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적잖은 법조계 인사가 ‘쉽지 않다’는 답을 내놨다. 전례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망 이후 4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고 권대희 사건’ 이야기다.
권대희씨 의료사고 사망사건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가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와 나눈 통화 녹취 공증본 한 대목. 해당 검사는 쟁점이던 의료법 위반 혐의를 기소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권씨 유족 제공.
■대리저술, 대작과 공장식 수술... 차이는?
지난 1년여 동안 이 사건을 취재하며 몇 가지 의문과 마주했다. 그중 하나는 성형외과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었다. 특히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분업화, 요컨대 유명인이 이름만 빌려주고 일은 아랫사람들이 하는 많은 경우가 그러했다.
본 기자만이 아니었다. 기자에게 이와 비슷한 의문을 던지는 이가 적지 않았다. 2006년 모 아나운서의 대리번역 논란 이후 수면 위에 떠오른 출판계 대리저술 및 번역 행태, 2016년 불거진 가수 조영남씨의 대작(代作) 사건 등이 주된 사례로 쓰였다.
일부 법조인들은 전관 변호사가 맡는 사건을 대부분 ‘새끼 변호사’들이 처리하는 관행도 언급했다.
권위자나 유명인이 이름을 팔고 아랫사람들이 실무를 처리하는 게 한국사회에서 일반화된 관행이라면, 권대희 사건이 특별히 문제가 되느냐는 의문이다.
권대희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성재호 검사는 핵심 쟁점인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불기소 처분하며 의사들이 수술실 밖에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을 때조차 권씨 수술실에 홀로 있던 간호조무사들이 의사들의 감독 아래 있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인접한 수술실에서 거의 동시에 연달아 수술을 진행하는 의사가 이전에 지나온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간호조무사의 행위를 감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 성형외과에서 논란이 돼 온 공장식 수술에 면죄부를 준 꼴이다. 이 같은 논리를 확장한다면 한 명의 숙련된 의사가 다수 비숙련 의료인과 함께 여러 수술실을 열어 수술을 연달아 진행하더라도 문제 삼기 어렵다. 병원의 공장화가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위에 언급했듯 사기나 상해, 살인죄를 따져볼 수는 없었던 것일까. 지난 2015년 대법원이 이준석 세월호 선장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것과 같이 의료진에게 위 범죄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권대희씨를 간호조무사가 압박지혈하는 모습. CCTV 화면에서 의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유령수술 의료진에 사기죄 기소 전례 있어
의료사고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의료사고를 일으킨 의료진에 사기죄를 물은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 2014년 이른바 ‘유령수술’ 파문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환자와 병원이 수술 전 합의한 의사 대신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한 사례가 대규모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성형외과에서 봉직의사로 일하던 A씨의 양심선언에 따르면, 이 병원에서 1년 간 대리수술을 받은 환자가 최소 185명에 이른다. 이중 33명이 병원을 상대로 형사절차에 돌입했다. 검찰은 문제 성형외과 병원장을 사기와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강남 3대 성형외과로 꼽혀온 이 병원에서 ‘유령수술’ 문제가 불거진 뒤 이렇다 할 성형외과 유령수술 사건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유령수술이 사라진 것일까.
2016년 발생한 권대희 사건은 성형외과 유령수술이 한층 진화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끔 한다.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이뤄진 권씨 수술에선 집도의가 수술에 일부 참여함으로써 위 ‘유령수술’ 사례와 달리 검찰이 ‘사기죄’ 적용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성재호 검사가 병원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며 작성한 공소장에 드러난 이 병원의 수술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마취하면 원장이 환자의 뼈를 자른다. 다음으로 보조의사가 원장이 절골까지만 진행한 부위를 세척한 뒤 구강 내 절개부위를 봉합하고, 간호조무사가 얼굴 부위에 붕대를 감으면 수술이 종료된다. 여러 수술실에서 이 같은 수술이 동시에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권씨가 수술을 받던 날도 그랬다.
이에 대해 검찰 공소장은 ‘수술이 연이어 시행되었고 이러한 수술 진행 방식에서는 수술에 관여하는 의사들이 각 환자의 출혈 정도 등을 고려한 건강 상태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여유 없이 연속적으로 수술만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위 성형외과 원장인 피고인이 고안한 방식’이라고 적고 있다.
성 검사는 이 같은 수술이 이뤄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단시간 내에 많은 환자의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라고 적어, 해당 병원의 수술방식 속에서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문제는 권씨와 같이 환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는 데 있다. 권씨의 친구는 권씨가 해당 병원과 상담할 당시 원장이 수술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말해 권씨가 안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본지 3월 14일. ‘사람이 죽었는데 '14년 무사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조>
검찰은 사기나 상해,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병원 허가와 의사 면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도 기소하지 않았다. 2년여에 걸쳐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에 대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상태였음에도 그랬다.
검찰은 다른 화가들이 대부분 작업한 그림을 알리지 않고 판매한 조영남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조씨 대작사건은 2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왔으나 검찰은 이에 불복하고 상고한 바 있다. 출처=fnDB
■檢, 조영남 대작 사건은 '사기' 기소... '이중잣대'
수술을 끝까지 집도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의사가 수술실에 남아 있는 다른 의료진의 의료행위를 감독한다고 보는 시각은, 한국 검찰이 수술을 위에 언급한 대리번역이나 그림 대작과 같은 행위로 보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현재 가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代作) 사기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상태로, 판결에 따라 향후 미술계의 문화와 관행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조씨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고객들이 주문한 그림에 다른 화가들이 대부분의 작업을 했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고 피해자 20명에게 총 1억8035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 대신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단순한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한지, 창작성을 보호받을 작가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미술협회는 2018년 성명을 내고 ‘근대 회화의 진품 가품을 가릴 때 덧칠만 해도 가짜라고 판단한다’며 ‘남이 그린 작품에 사인만 하고 본인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창작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를 권대희 사건에 대입해 살펴보면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놀라운 점은 검찰의 태도가 두 사건에서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있다. 검찰은 조씨를 사기혐의로 기소하고 2심 재판부의 무죄판결에도 불복했으나, 권대희 사건에 대해선 사기죄는 물론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조차 기소하지 않았다.
특히 적지 않은 전문 감정기관이 수술이 끝마쳐지지 않은 시점에서 지혈을 간호조무사에게 맡긴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수술 중 지혈 행위는 일반 환경의 지혈과 달리 의료 행위에 포함’된다며 ‘의사의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기는 것은 적법한 행위로 볼 수 없음’이라고 회신한 것이 대표적이다.
검찰을 이 역시 결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모든 병원에서 집도의는 수술의 일부만을 맡고 수술을 나가도 문제가 없게 된다. 또한 문제 병원과 같이 환자에게 통지되지 않은 20대 신입의사가 수술을 이어받아 진행해도 잘못이 없다. 심지어는 간호조무사 홀로 수술실에 남아 조치를 취해도 의사의 감독 하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 권대희씨뿐 아니라 모두가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쯤에서 묻습니다.
당신은 검찰의 이 같은 태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의 사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김성호 기자의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