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석유 제외 물가 0% 초반대
기업 매출 줄어 생산·고용도 감소
코로나19 충격으로 근원물가 상승률이 0%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마이너스 전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마이너스로 전환된다면 외환위기 때인 지난 1999년 이후 처음이 된다. 더 큰 문제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장기간 낮은 수준에 멈춰 있다는 점이다. 근원물가는 소비자물가에서 국제유가와 농산물값 등 공급요인을 제외한 수요 측면의 기조적 물가 추세를 보여주는 지표다. 근원물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소비가 위축됐다는 의미가 된다. 소비위축 장기화는 생산과 고용 위축을 유발한다.
■근원물가 마이너스 전환하나
6일 통계청에 따르면 근원물가를 의미하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4월 기준 1년 전보다 0.3%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더욱 심각하다. 4월 누적 상승률은 0.1%에 그치면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전반적 경기부진에 따른 (근원물가에 대한) 하방압력이 크기 때문에 0% 혹은 마이너스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요인을 포괄하는 종합적 물가지수) 마이너스 상황이다. 이미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마이너스 전환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국내외 코로나19 충격을 고려하면 근원물가가 기조적으로 상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은행도 4월 통화정책 방향에서 국제유가 하락 영향 확대, 수요측 압력 약화 등을 고려해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 기준) 상승률이 지난 2월 전망치인 0.7%를 상당폭 하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내에 출하되는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수입상품과 서비스 가격까지 반영한 '국내공급물가지수'도 3월에 전월 대비 1.0% 하락했다. 4개월 만에 하락 전환이다.
■생산·고용에 악영향
일시적인 근원물가 상승률 마이너스 전환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근원물가 상승률이 0%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국내 생산과 고용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장기간 0%대에 머물러 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8월을 시작으로 9개월 연속 상승률이 0%대를 기록 중이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를 기준으로 지난해 3월부터 14개월 연속 0%대를 나타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수요압력이 약한 상황에서 근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현재(0%대) 수준을 횡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중기적 시각으로 보면 수요위축으로 근원물가가 낮아지면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생산 및 투자, 고용을 줄이게 되고 이는 다시 수요를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불황이 만들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장기간 소비위축이 이어지면 기업의 심리는 소극적으로 바뀐다. 투자해 생산을 늘려도 판매가 늘지 않는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생산과 투자에 소극적이면 고용도 줄어든다.
이에 따라 당분간 생산과 고용의 부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3월 전 산업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은 전월보다 0.3% 감소한 바 있다.
3월 취업자 수도 2660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5000명 감소했다. 통계 사상 11년 만에 첫 감소 기록이다. 근원물가 부진을 고려하면 4월 이후에도 부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