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부임 후 곧바로 코로나19가 터졌다. 활동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반감금생활에 들어갔다. 달리 도리가 없었다. 통제를 어기면 자칫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힘든 기간을 견뎌보려고 조그만 화분을 두개 구입했다. 허브 식물과 상추 씨앗도 함께 샀다. 방안에 조그만 '푸름'이라도 두고 싶었다.
상추는 파종한 지 2~3일 만에 싹을 틔웠지만, 허브는 보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똑같이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했는데도 그랬다. 모종을 살까, 다른 것을 심을까 고민하던 중에서야 허브도 힘겹게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함 탓이었다. 키우는 법이 다르고 통풍이나 파종의 깊이 등 조건도 식물에 맞게 충족돼야 하는데 허브 화분만 쳐다보고 있었다. 발아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잦아들자 중국 정부는 경제활동 재개에 착수했다. 가동을 멈췄던 공장의 톱니를 다시 돌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근로자를 불러들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가 워낙 컸던 탓에 경제회복은 쉽지 않았다. 중국의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역대 최저인 35.7까지 떨어졌고, 같은 달 차이신 서비스업 PMI도 '나락'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인 26.5까지 추락했다. 그나마 도시 실업률은 2월 6.2%, 3월 5.9% 정도에 머물렀지만 이는 도시로 일하러 온 농촌 근로자를 제외한 숫자다. 홍콩 언론은 이런 농민공까지 포함하면 실업률은 25%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각종 지표가 내리막을 달리면서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8%를 기록했다.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해오던 중국에 닥친 44년 만의 첫 마이너스 충격이다.
중국은 대표적인 내수국가다. 14억 인구의 소비시장이 해외보다 경제성장 측면에선 더 매력적이라는 의미다. 중국 정부는 그래서 경제활력을 위해 경기부양 정책 중 하나로 소비활성화에 방점을 찍었다. 소비쿠폰 등으로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면 공급, 즉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도 생기를 되찾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지난 1~5일 노동절 황금연휴를 맞아 베이징 외곽의 주요 유원지와 관광지는 넘쳐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유원지로 입장하는 관광객의 줄서기까지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을 보면 만리장성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가득 차 있다. CCTV는 5일 연휴 동안 1억1700만명이 관광지를 찾았으며 관광수입은 475억위안(약 8조1700억원)이라고 보도했다. 전국 주요 관광지는 중앙·지방 정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베이징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은 비교적 한산했다. 이곳은 각종 쇼핑몰과 백화점, 영화관, 음식점, 포장마차, 호텔 등이 즐비해 있어 중국의 명동으로도 불린다. 손님이 없으니 무료한 듯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상점 종업원이 많았다. 예상대로라면 소비쿠폰 등으로 수요심리가 되살아나 만리장성처럼 쇼핑객으로 북적거려야 하는데 이날 왕푸징 모습에선 그렇지 않았다. 정작 회복이 필요한 민간소비에선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셈이다.
한 나라 소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꺼번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사실상 무리다. 중국 정부도 점차 회복 중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2월부터 경제활동 재개에 나선 중국인의 소비 행태가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중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똑같이 소비쿠폰만 던져주고 소비자만 쳐다보기보다는 계층별 맞춤이나 재난지원금 등 다양한 형태의 소비촉진 접근법이 더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식물 종류만큼 인구가 많고 소비성향도 다양한 국가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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