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껍질 같은 정의연 의혹
사립유치원에 준엄한 잣대
공익법인도 똑같이 다루길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시민단체의 한 간부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의 해명을 수긍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예 정관에 외부감사를 못 박았어요. 99, 999 같은 숫자는 나올 수가 없지요."
정의연·윤미향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의혹이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껍질 같다. 친일, 반일 거대 담론은 내 깜냥 밖이다. 다만 회계에 대해선 몇 마디 거들고 싶다. 일본 만화 '은하철도'도 아니고, 999는 심했다. 정의연이 백번 잘못했다. 위안부 후원금은 단 1원도 허투루 쓸 돈이 아니다. 같이 일하던 분의 자녀에게 김복동장학금을 준 것은 오해를 부를 만하다. 이해충돌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쉼터 관리인에 이사장의 부친을 앉힌 것도 마찬가지다.
정의연과 윤 당선인을 두둔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엉터리 회계는 비단 정의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주요국 중 꼴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지난해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를 63개국 중 61위로 매겼다. 2017년엔 맨꼴찌다. 대우조선해양을 보면 우리 수준이 보인다. 우리가 중국 통계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선진국들은 한국 회계를 불신한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다행히 기업 회계는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외부감사법을 전부 뜯어고쳤다. 삼성전자처럼 큰 회사들은 올해부터 '6+3' 시스템을 적용받는다. 6년 동안 감사인을 자율선임하면 그 뒤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한다. 기업과 감사인(회계법인) 간 유착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다. 6+3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만큼 강력한 회계투명성 보장 장치다.
비영리조직 회계는 갈 길이 멀다. 사립유치원, 사립학교, 종교단체, 요양병원, 공동주택(아파트)이 대표적이다. 시민단체와 같은 공익법인도 마찬가지다. 관할기관도 다르고 적용하는 법도 제각각이다. 정의연은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모금액이 100억원 이상인 단체만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다"며 "정의연은 변호사와 회계법인을 통해 내부감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관을 보면 정의연은 감사직무(12조), 회계업무보고(29조) 등 나름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내부감사에만 의존한 탓에 '999'에서 보듯 전문성은 제로다.
정도진 교수(중앙대·경영학)는 해법으로 외부감사 공영제를 제시한다. 1단계로 한국공인회계사회(KICPA) 같은 공적 기관이 전문가 풀을 짠다. 2단계로 공인회계사회가 정부, 지자체에 외부감사인을 추천한다. 3단계로 정부, 지자체가 외부감사인을 선임해 공익법인 회계를 맡긴다. 이는 회계에 공공성을 가미한다는 점에서 버스공영제와 비슷한 면이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사립유치원은 엉터리 회계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비리를 들춘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스타로 떴다. 박 의원은 지난달 총선에서 서울 최고 득표율(64.4%)로 재선에 성공했다. 더도 덜도 말고 정의연 같은 공익법인 회계도 사립유치원처럼 다루면 된다. 자기 편이라고 다른 잣대를 대면 안 된다.
이웃 일본은 알아주는 회계 선진국으로 꼽힌다. 정의연 논란은 일본 보기에 참 부끄럽다.
공인회계사회 최중경 회장은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고 말한다. 살짝 과장하면 '회계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정의연 회계 논란이 남긴 교훈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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