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성범죄 택시기사 면허 규제 '정당'
시·도교육청 성범죄 교사 퇴출 잇따라
의사는 강력범죄 저질러도 면허 유지
의료법 개정안 번번이 국회문턱 못넘어
[파이낸셜뉴스] 딸을 강제로 추행해 실형을 산 택시기사가 지자체의 면허취소 처분에 반발해 제기한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리며, 면허별 형사범죄에 따른 자격박탈 여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원에 대해서도 각 시·도교육청이 교단에서 퇴출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직군의 경우 차이를 두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비판이 잇따른다.
성범죄를 저지른 택시기사의 개인택시면허 박탈이 위법하지 않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fnDB
■성범죄 택시기사 면허박탈 '합헌'
헌재는 지난 27일 개인택시 기사 A씨가 성범죄자의 영업을 제한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에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인천시는 2017년 9월, 자신의 딸들을 강제로 추행해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택시기사 A씨의 개인택시 면허를 취소했다. 여객자동차법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자에게 운송사업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게 처분의 근거였다.
이에 A씨는 자신의 범죄와 택시운전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며 반발했다. A씨는 헌재에 위헌소송을 청구해 여객자동차법이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폭력은 택시기사의 업무수행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성과 책임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범죄로, 이 죄를 저지른 전과자들로 하여금 직무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적절한 조치라는 판단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향후 성범죄자의 개인택시 면허를 취소하는 사례가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남교육청은 지난달 교원징계위를 열고 동료 여교사를 성추행한 교사를 해임하기로 결의했다. 서울시교육청을 포함한 전국 시도교육청은 교원 성범죄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fnDB
■교사 성범죄 '불관용' 추세
교사로 눈길을 돌려보자. 지난달 전라남도교육청은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도내 중학교 교사 B씨를 해임하기로 결의했다. 도교육청 감사 결과 B씨가 지난 2018년부터 동료 여교사들을 강제로 추행해온 사실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지난 29일엔 초등학교 1학년 제자에게 팬티를 세탁하는 숙제를 내주고 부적절한 표현을 한 초등학교 교사 C씨가 파면되는 일도 있었다.
울산시교육청은 교육공무원 일반징계위원회를 열고 해당 교사의 파면 처분을 결정했는데, 사유는 학생과 동료교사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교원 품위를 손상하는 게시물을 게재,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 위반, 영리업무 및 겸직금지 위반 등으로 알려졌다.
파면처분의 경우 해임과 달리 연금과 퇴직수당 수령도 50%로 제한되는 최고 수준 징계다.
이 사건은 울산지방경찰청이 아동복지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일선 시·도교육청이 성 관련 부적절 범죄를 저지른 교원에 대해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만 교원의 면허를 영구 박탈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사의 경우 택시기사와 달리 교원 자격을 영구 박탈할 수 있는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통계상 전문직종 가운데 가장 많은 범죄를 기록하고 있는 의사는 형법 상 죄를 범해도 면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fnDB
■전문직 중 '유일' 강력범죄에도 의사면허 '유지'
의사는 전문직종 가운데 성범죄 등 형법 상 범죄에 가장 관대한 면허규제를 두고 있다. 의료법 제8조 제4호가 의료인의 결격 사유 항목을 규정하고 있는데, 요건을 의료 관련 범죄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료인은 살인, 강간 등 일반 형사 범죄 등으로 금고형 이상의 처벌을 받더라도 의사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유명 정신과의사의 환자 그루밍 성범죄 및 병원 여직원 강제추행 사건, 마취된 여성환자를 성추행하고 엽기발언을 한 서울아산병원 인턴 사례, 그밖에 몰카 등 각종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서도 의사면허 취소 처분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의사가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 형을 확정받으면 면허를 취소하고 그 내용을 공표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권칠승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했으나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의사 면허를 보다 강하게 규제하자는 취지의 의료법 개정안 20여건이 모두 이와 같은 운명을 맞은 바 있다.
보건의료당국의 소극적 태도와 의료계의 반대가 법 개정이 안 되는 이유로 지목된다. 이번에도 보건복지부는 ‘입법취지엔 공감하지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고, 의료계에선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법무사 등 국가자격의 경우 결격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해 직무수행과 무관한 죄로 형이 확정되면 면허취소 및 자격정지 등의 처분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에서도 형법상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 면허취소나 정지 처분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의 경우 의사가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면허취소 또는 의료업 정치 처분을 내린다. 독일 역시 의사가 형법 위반으로 확정판결을 받으면 면허 취소나 정지가 가능하다. 미국에선 형사사건 유죄 전력이 의사 면허가 나오지 않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본지 4월 4일. ‘범죄 저질러도 면허 유지... 무적 방패 '의료법' 이대로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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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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