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민주화 시위 ‘재점화’ 될까
- 더욱 강경해진 홍콩 정부
- 송환법 1주년·총파업·9월 선거 ‘동력’
[홍콩=AP/뉴시스]27일 홍콩 중심부에서 한 여성이 시위 진압 경찰이 경비중인 거리를 건너려 하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처벌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홍콩 국가보안법 수정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홍콩 시위대는 입법부 청사 밖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1주년, 14일 총파업 투표, 오는 9월로 예정된 입법회 선거 등과 맞물리면서 다시 점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보안법은 송환법과 달리 폐기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홍콩·중국 정부도 강경 대응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코로나19 확산의 변수까지 존재해 그 동안은 지난해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 여기다 홍콩 주민들도 저항보다는 해외 이주나 계좌이동 등 엑소더스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다. 보안법 찬성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홍콩 민주화 시위 ‘재점화’ 될까
9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정부가 홍콩과 범지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을 추진하자, 홍콩인들은 강력 반발하며 그 해 6월9일 거리로 뛰쳐나왔다. 언뜻 범죄인에 대한 국제 공조로 보이지만 실제는 인권운동가 등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그날 시위는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 최대 인파인 100만명이 모였다. 홍콩 인구가 74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7명 중 1명은 ‘저항’을 외친 셈이다. 중국을 등에 업은 홍콩 정부는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11월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세력이 압승을 거두면서 결국 송환법은 철회됐다.
해가 바뀌어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지난해와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판단을 뒤집기 어렵도록 이미 양회에서 보안법 제정 추진을 결의하는 등 치밀하고 준비해 왔고 홍콩 내 친중파의 움직임도 조직적이다.
송환법이 인권운동가 등 특정인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면 보안법은 전국민이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불안이 가중된 홍콩인의 저항도 거세지 못하다. 오히려 홍콩을 떠나 대만 등 주변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주요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한 외신은 “불안감에 휩싸인 홍콩인들의 해외 은행 계좌 개설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면서 “영국계 금융기관인 HSBC와 스탠더드차터드에 이러한 문의가 25∼30% 증가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도 걸림돌이다. 이 질병의 특성상 홍콩 내에서 확산의 불길을 잡혔어도 언제든 재발 우려는 있다. 홍콩·중국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명분으로 시위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범민주 세력이 의지하는 미국 등의 지원도 적극적이지 않다. 미국은 자국 내 흑인 사망사건 이후 홍콩 관련 언급이 대폭 줄었으며 일본은 중국과 관계 악화를 고려해 보안법 비판 공동 성명에 참여를 거부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를 주도해온 범민주 진영의 세력 역시 상대적으로 규모가 약해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송환법 시위로 이미 수천명의 활동가가 체포됐고 올해 시위는 새로 구성된 단체가 중심축을 잡는 형국이다.
■더욱 강경해진 홍콩 정부
그러나 홍콩 정부의 대응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시민은 지난해 대규모 시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더 이상 혼란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맞춰 홍콩 정부는 경찰력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했다.
홍콩 의회는 이를 위해 2020~2021년 예산안에 경찰 정원을 기존보다 7% 늘여 3만8000여명까지 증가시키는 방안을 담았다. 이로써 내년 홍콩 인구 10만명당 경찰 수는 최근 20년 동안 최고치인 442명에 달하게 된다. 운영 예산도 전년도보다 24.7% 확대한 219억 홍콩달러(3조4000억원)으로 잡았다.
SCMP는 “이 가운데 61억 홍콩달러(약 9400억원)는 소총, 최루탄, 방패 등 시위 대응 장비를 구매하는 데 쓰이게 된다”면서 “이러한 경찰의 공격적 전략이 홍콩 내에서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 등이 적극적으로 벌어지지 않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송환법 1주년·총파업·9월 선거 ‘동력’
반면 송환법 반대 시위 1주년이 범민주 세력을 다시 결집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난해 정부와 투쟁에서 승리한 경험을 되살리면 시민 동참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14일 총파업 투표 참여를 위해서도 이 같은 사전 작업은 필요하다.
오는 9월 입법회 선거에서 범민주 세력이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가장 큰 숙제도 홍콩인들에게 당위성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서 보안법을 제정해도 홍콩 기본법 부칙 삽입 등 이후 절차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일사천리도 진행될 공산이 크다.
지난 4일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31주년 집회에 1만여명의 홍콩 시민이 운집하는 저력을 보여준 점도 긍정적이다. 동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샤오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부주임이 “보안법은 분리 독립, 체제 전복, 테러, 외세 개입 등 4대 범죄를 저지르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러한 홍콩 내 동조 분위기 확산을 우려한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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