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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회고록 추가 폭로 “트럼프, 北에 제재 완화 시사”

볼턴 회고록 추가 폭로 “트럼프, 北에 제재 완화 시사”
지난 2018년 4월 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제재 완화를 시사했다는 폭로가 추가로 공개됐다. 폭로에 나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 역시 한국과 상의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1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전날 현지 언론에 일부 유출됐던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벌어진 방: 백악관 회고록'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에서 제재 완화 시사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김정은은 1차 싱가포르 회담 당시 트럼프에게 "'행동 대 행동' 접근법을 따르기로 합의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다음 단계로 유엔 제재 해제가 가능한지 물었다.

이에 트럼프는 '열려 있으며 이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한다'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답변에 낙관적인 기대를 안고 회담을 마쳤다.

아울러 트럼프는 회담 자리에서 한미연합훈련이 비싸고 도발적이라며 반복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그는 연합훈련을 '달러 낭비'로 간주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훈련 축소 또는 종료를 원한다고 말하자 다른 장군들을 무시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테리는 자신이 본 회고록 내용을 토대로 트럼프가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중 누구와도 이 문제를 상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한국과의 상의도 없었다"라며 "트럼프는 단지 누구와의 상의도, 누구를 상대로 한 통보도 없이 김정은에게 동의한 것"이라고 회고록 내용을 전달했다.

볼턴은 회고록에 트럼프가 회담 이후 "이 전쟁 놀음은 말할 것도 없고, 왜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는지, 왜 아직도 한반도에 그렇게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테리는 1차 회담 자리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칭찬한 내용도 소개했다. 당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취지로 질문했고 이에 트럼프는 그 질문이 마음에 든다며 "매우 영리하고, 꽤 비밀스러우며, 매우 좋은 사람이고, 완전히 진실하고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답했다. 테리는 이러한 내용들을 지적하고 "볼턴은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 (북한에) 지나친 기대를 불러일으켰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시작부터 결렬 생각했던 하노이 회담
볼턴의 회고록에는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후 사정도 실려있다. 볼턴은 트럼프가 회담 전 예비 회의에서 '주도권은 내가 가졌다', '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나는 떠날 수 있다'를 핵심 요소로 지목했다. 그는 사전에 '전체적인 합의(빅딜)'와 '부분 합의(스몰딜)', '결렬'을 포함해 세 가지 결과를 예상했으며, 극적이지 않고 제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부분 합의'는 거부했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회담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의회 청문회를 지켜보며 밤을 새웠다. 그는 이 과정에서 짜증을 내며 "부분 합의와 결렬 중 어느 게 더 큰 이야기인가"라고 물었다.

회고록을 검토했던 테리는 트럼프가 회담 결렬을 더욱 극적이라 판단했고 이를 통해 다른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양측은 하노이 회담에서 합의에 근접했으나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 이외 다른 제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의견이 엇갈렸다. 당시 트럼프는 추가로 무언가를 제시하라고 요청했지만, 김정은이 이를 거절했고 트럼프는 회담 결렬을 택했다.

■판문점 회동은 홍보 위한 트럼프 욕심
테리는 회고록에 지난해 6월 이뤄졌던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이야기도 담겨있다고 밝혔다. 볼턴은 당시 회동이 순전히 화제 집중을 노린 트럼프의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회동 전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이 이를 본다면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볼턴과 믹 멀베이니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은 트럼프의 돌발 행동에 몹시 놀랐다. 폼페이오는 이를 '완전한 혼란'으로 봤다. 볼턴은 트위터가 정상회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에 메스꺼움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 회동이 실질적인 의제가 없는 '언론 보도용'이었다고 평가했다. 볼턴은 트럼프의 태도에 대해 "개인적 이익과 국가의 이익 사이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테리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판문점 회동을 원했던 것은 트럼프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회동을 먼저 제안했고 그가 자신을 매우 만나길 원했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이에 대해 "모든 게 말이 안 된다. 누가 만남을 간절히 원했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트럼프)이다"라고 서술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회동 이후 "세계가 그 회동에 미쳐 있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주요20개국(G20)을 대체했다"라며 만족을 표했다.

테리는 회고록 내용을 전하면서 "연이은 4차례 정권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확산 위협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볼턴의 결론에 반박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다만 "볼턴이 더 나은 정책 제안을 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볼턴은 보좌관 재임 당시 북한 및 이란과 전쟁까지 불사하려는 대표적인 강경파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